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스승의날’이자 ‘부처님오신날’이던 15일, 한국일보는 귀중한 행사를 치렀다. 창간 70주년을 맞아 독자 사은의 일환으로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이드로 나선 역사탐방 행사를 가졌다. 경기 연천 전곡리의 30만 년 전 구석기 유적과 파주 오두산 전망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과거를 멀리 볼수록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배 전 관장의 말씀은 참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울림이 됐다.
□ 주한 미군이 최초 발견자이지만, 배 전 관장이 발굴을 주도한 전곡리 유적은 세계 고고학사를 다시 쓰게 만든 곳이다. 아슐리안형 뗀석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가 발견되지 않아, 모비우스 등 서구 학자들은 '구석기 문화 이원론'을 주장했다.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세계를 나눴다. 은연중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유럽보다 뒤진다는 주장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 학자들은 전곡리 유적 주인공을 우리의 직접 조상이 아닌 ‘호모에렉투스’로 추정한다. 이들은 나중에 몰려온 호모사피엔스에 의해 사라졌다. 새 시대, 새 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수십만 년을 지배한 종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인류의 소비 행태도 그렇다. 산업시대에는 원가절감을 위한 소품종 대량생산이 대세였지만, 어느 순간 다품종 소량생산을 넘어 개인별 맞춤 소비시대가 현실화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혁명으로 다양한 시민의 저마다 다른 니즈를 저렴하게 충족시키는 기술이 출현했다.
□ 개인별 맞춤 소비는 복지행정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인별 소득파악이 어려울 때에는 비효율에도 불구, ‘보편복지’가 불가피했다. 그 결과는? 고령화와 맞물려 인구의 5분의 1이 경로우대로 대중교통을 무상 이용하고, 65세 이상 국민의 70%(700만 명)에 25조 원 가까운 돈이 기초연금 명목으로 지급된다. 모두에게 귀중한 돈이지만, 절실함은 저소득층일수록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선별 지원해야 저소득 고령층을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AI 시대의 비차별적 돈 뿌리기 공약은 철 지난 ‘호모에렉투스’ 접근법에 가깝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