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최근 아파트 단지에서 헤매던 고양이를 데려와 처음 고양이와 살게 된 집사입니다. 지금 같이 산 지 2개월 반 정도 됐습니다. 처음보다는 많이 친해졌다고, 적어도 집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아직도 소파 밑을 자기 숨숨집처럼 쓰고 있긴 하지만, 집사가 있어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집사가 보는 앞에서 밥도 먹고, 집사가 집에 있으면 집사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여전히 멀어지긴 하지만 이전보다 그 거리가 확실히 줄어든 게 느껴집니다. 사냥 놀이를 할 때면 슬쩍슬쩍 집사 몸에 닿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만지려고 다가가면 피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1. 아직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 적이 없는데, 이제 정말 데려가야 할까요? 외관상 아파 보이는 곳이 없고,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도 적응이 우선이라고 해서 일단 대기 중입니다. 그런데 예방접종이나 중성화 때문이라도 언젠가 동물병원은 가야 하는데, 다녀오면 그나마 남은 신뢰도 ‘와장창’ 깨질까 봐 걱정됩니다. 병원에 다녀와도 사람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2. 고양이와 스킨십을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고양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무시하고, 기다리라는 조언을 많이 봤습니다. 그 조언 덕분에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것 같지만, 여전히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무시하고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먼저 만지려고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슬쩍슬쩍 만지라는 얘기도 있던데, 오히려 거리만 멀어지는 것 같고요. 긁힌 적도 여러 번이라 집사도 무서워 선뜻 시도하기가 어렵네요. 장갑을 끼우고 계속 노력해야 할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바람직할지 궁금합니다. 3. 소파 아래를 숨숨집으로 사용하는 고양이, 소파 아래를 막아버려야 할까요? 고양이가 바깥을 이전보다 편하게 돌아다니긴 하지만, 아직도 사람이 다가가면 소파 밑으로 숨어버립니다. 애착을 느끼는 장소가 있는 건 바람직한 것 같아 그냥 뒀지만, 자신감이 생겼는지 소파에서 튀어나와 사람에게 냥냥펀치를 날립니다. 이동장 교육 겸 이동장을 숨숨집으로 쓰게 하고 싶은데, 들어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집사가 잘 보이지 않으니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힘들 것 같고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4. 밥을 가져다주면 하악질하는 고양이, 이유가 뭘까요? 부엌에서 밥을 꺼내 소파 옆에 가져다주는데, 손에 밥이 없으면 전혀 그러지 않다가, 밥이 들어있는 밥그릇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가면 하악질을 자주 합니다. 물론 하악질만 하고 따로 공격을 하진 않긴 합니다만, 하악질을 하는데도 밥을 가져다주면 혹시 잘못된 버릇이 들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그리고 그냥 놔둬도 괜찮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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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반려동물의 행동문제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하이 반려동물 행동 클리닉’의 원장 이우장 수의사입니다. 보내주신 사연처럼 길냥이를 집에 데리고 오면, 고양이와 친해지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길냥이는 어쩌다 길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부모의 성격은 어떤지 등 사전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적어도 1~2개월 정도의 적응 기간을 거쳐 본래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연처럼 보호자와 함께 산지 2개월이 지났다면 일단 현재 환경을 파악하고 적응할 시기는 충분히 됐다고 봅니다. 물론 보호자와 친해지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사연자님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예방접종이나 중성화 등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병원을 잠깐 다녀온다고 해서 현재 환경에 대한 적응이 다 틀어지진 않을 겁니다.
피할 수 없는 병원 첫 경험.. ‘더 좋은 기억’으로 남기려면
병원에 가야 하는 시점은 고양이마다 다르겠지만 외관상으로 문제가 보이거나, 기본적인 식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이로 인해 더욱더 예민하고 불안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가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고양이들은 스스로 아프거나 불편한 것을 잘 숨기기도 하는 만큼, 1세를 넘겼거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검사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병원 방문에 대한 고양이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는 걸 권합니다. 우선 병원에 가는 과정부터 익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하고자 하는 이동장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고, 이동장을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겁니다. 또한 이동장에는 푹신한 담요 등을 깔아주고 친숙해지기 위해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기적으로 이동장 또는 이동장 근처에서 주는 연습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밥시간 때마다 밥그릇을 천천히 이동장 안쪽으로 옮겨주면 더욱 좋습니다.
만약 밥그릇을 천천히 안쪽으로 옮기면서 고양이가 밥을 먹지 않거나, 평소보다 너무 경계해서 밥도 허겁지겁 먹는다면, 현재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럴 땐 좀 더 편안한 장소에서부터 속도를 늦춰 진행해 주세요. 자발적으로 이동장 안에 들어가서 쉬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기 전까지는 이동장 문을 항상 열어두는 게 좋습니다. 또한 병원에 가는 당일에는 이동장에 미리 고양이가 좋아하는 페로몬을 뿌리고 똑같이 간식을 통해 자발적으로 들어가게 유도하면 더 좋습니다.
또한 이동장을 들고 이동할 때, 밖을 보는 것에 자극을 많이 받는 고양이의 경우, 담요 등을 통해 이동장을 감싸서 시야를 일부 또는 전체적으로 차단해 보세요. 또한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과격한 운전을 삼가고, 병원을 갈 때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 보상을 챙겨가서 잘 먹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원에 방문하는 시간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붐비지 않는 때가 좋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 너무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면 필수적인 검진만 하고 다음 방문 전에는 항불안제를 미리 처방받아 복용하고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먼저 다가가서 쓰다듬거나 안아주려고 하기보다는 다시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혼자 만의 시간을 주되, 중간중간에 간식이나 먹이 보상 또는 놀이 등을 제공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고양이의 몸짓을 통해 어느 정도 집에 다시 적응했는지 확인할 수도 있는데요. 숨어 있거나 움츠러든 모습은 아직 현재 환경에 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인 반면, 꼬리를 올리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 현재 환경이 편하다는 증거입니다.
경계심 많은 냥이에겐 ‘인내심’이 필수
사람에 대한 친화성 및 사회성은 어릴 때의 경험과 부모의 영향, 그리고 현재 보호자의 행동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낯선 환경과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가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쌓이기 위해선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과 동시에 고양이 입장에서 보상이 되는 것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 도움 됩니다.
이번 사연처럼 거리는 좁혀졌지만 더 이상 다가오진 않는다면 일단 태생적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은 아이로 보입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도를 깨지 않도록 무리해서 만지려고 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길을 막는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추가로 해볼 수 있는 것은, 적정거리라도 좁혀지는 것이 보인다면 고양이가 보호자를 인지하는 순간에 “옳지”라고 말한 뒤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던져주는 방법입니다. 간식을 먹기만 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차 보호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하고 거리가 좁혀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간식 비중이 너무 높으면 건강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의 10% 미만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는 나이, 몸무게에 따라 다르므로 전문가와 상의 후 조절해 주세요.
고양이를 위한 ‘비상구’는 꼭 필요해요
또한 고양이마다 높은 곳을 선호하는 아이와 숨을 곳을 선호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숨숨집과 수직 공간을 모두 적절하게 이용하기 때문에 둘 다 적절한 장소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사연에서의 고양이처럼 소파 밑이나 침대 밑을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영역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고양이가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보호자가 다가가면 소파 밑을 들어가는 것은 결국 어떤 위협이 있을까 걱정하는 ‘불안’ 감정에서 기인한 행동으로 보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안전한 피난처가 된 셈입니다. 무작정 이 공간을 막아 버리면, 고양이 입장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셈이 되어 더욱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막으려면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한편 이동할 수 있는 숨숨집과 같이 새로운 안전한 피난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합니다.
밥의 문제일까, 밥'그릇'의 문제일까?
마지막으로 하악질은 고양이가 공격하기 전에 보내는 경고 신호이며, 결국 거리를 늘리기 위한 방어 수단입니다. 평소에 하악질을 하지 않는 고양이가 밥그릇을 가져갈 때 하악질을 한다면,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결국 고양이가 위협을 느낀 것은 맞습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가가는 행위에 두려웠을 수도 있으며, 그것이 과거 안 좋은 경험과 연관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하악질을 유발하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좀 더 멀리서 밥그릇을 내려놓고 기다려 주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사람에 대한 사회성이 부족한 성묘라면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데 더욱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겁니다. 혹여 친해지더라도 집사의 로망인 ‘개냥이’가 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내용대로 실천하면 차차 접근성이 나아질 수 있지만, 만약 고양이의 높은 불안 감정으로 삶의 질까지 낮아진다고 판단되면, 수의사에게 행동분석 진료를 받아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초보 집사와 고양이의 적응기가 빨리 끝나고 편하게 생활할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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