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음악극 '섬: 1933~2019'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전남 고흥 남쪽 끝에 위치한 소록도는 섬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 하여 소록도란 이름이 붙었다. 순하고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섬은 한센병 환자들의 섬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한센병 환자를 이곳에 집단 거주시키고 외부와의 왕래를 차단했다.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들은 그곳에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196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이곳에 파견됐고, 자원봉사가 끝난 후에도 남아 40년간 봉사를 이어갔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박소영 연출가,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의 목소리 프로젝트 2탄으로 기획됐다. 선한 영향력을 실천한 실존 인물을 조명하는 목소리 프로젝트 1탄은 노동운동의 기수 전태일의 이야기를 담은 '태일'이었고,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변호사를 담은 3탄 '백인당 태영'까지 선보였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2019년 짧게 초연했지만 반향이 컸다. 묵직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출연진이 열두 명으로 비교적 규모가 커 5년 만에야 재공연 기회를 얻었다.
삼대에 걸친 소록도의 수난사
전태일 열사나 이태영 변호사를 다룬 목소리 프로젝트가 인물 자체에 집중했다면 '섬: 1933~2019'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헌신적 활동 외에도 소록도에서 참혹한 대우를 받은 한센병 환자들의 삶,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를 보여준다.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환자들을 소록도에 집단 이주시켰던 1933년부터 두 수녀가 소록도에 입도해 활동한 1960년대 이후의 생활, 그리고 특수학교 설립 문제로 갈등을 벌이는 2019년 현재를 3대에 걸친 수난사로 풀어낸다.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 갱생원에 들어오게 된 열아홉 살 백수선은 지옥과 같은 실상을 마주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성치 않은 몸으로 고된 노역을 하는 와중에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사랑이 움튼다. 갱생원에서 연하의 박해봉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갱생원은 감염을 막고 아이를 지킨다는 이유로 아이와 부모를 분리시키고, 한 달에 한 번 거리를 두고 만나게 했다. 작품은 안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의 상봉 장면을 먹먹하게 그린다. 기다란 신작로에 한쪽엔 아이들이 바람을 등지고 서고, 부모들은 병균이 옮지 않도록 바람을 맞으며 늘어선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안부를 묻고 싶은 부모와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고 안심시키려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대화가 오고 간다. 시간이 다 돼 갈수록 한마디라도 더 전하고 싶은 부모와 아이의 말은 절규에 가까운 고함으로 변하고 아수라장이 된다. 이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바람을 등지고'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준다.
한센병은 사라져도 편견과 혐오는 남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활동한 1960년대 이후 장면에서는 소록도에서 나고 자란 백수선의 딸 고영자가 두 수녀를 돕는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어색한 억양이지만 사투리와 구수한 욕을 적절히 섞어 말하는 등 친근한 인물로 그려진다. 두 수녀는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새로운 삶을 찾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두 수녀의 공적은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한센병 환자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준 것이다. 젊은 시절 소록도에 들어가 노인이 돼 나가는 순간까지 긴 시간 한결같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한센병은 한국에서 2019년 이후 사라졌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여전하다.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인 고영자의 딸 고지선은 발달 장애아인 김지원을 낳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김지원은 모자로만 표현된다. 발달장애아를 특정해 버려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 않기 위한 연출적 선택이다. 80여 년에 이르는 수난사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연출은 효과적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의 휘몰아치는 분노와 이들에게 아낌없는 위로와 사랑을 준 음악은 관객들을 함께 분노하고 위로받게 한다. 7월 7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