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경주 '테스트베드'로 수소차 신기술 개발
68세 회장, 직접 액체 수소 넣은 레이싱카 운전
"우리의 적은 이산화탄소, 탄소 저감 도전이 중요"
25일(현지시간) 일본 후지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즈오카현 후지 스피드웨이(4.563km)에서 열린 '슈퍼 다이큐 24시'(Super Taikyu 24H Series) 경주장. 24시간 경주로 완성차의 내구성을 검증하기에 이름에 '다이큐'(耐久)가 있다.
이날 55개팀 59대의 레이싱카가 달린 이곳은 굉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 경주장 특유의 매캐한 화석 연료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당수 차량이 가솔린으로만 엔진을 구동하지 않고 대체 연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차량이었기 때문. 이번 경주는 도요타 '루키 레이싱'(Rooki Racing) 팀이 24시간 동안 경주장 773바퀴를 돌아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차는 같은 팀의 숫자 '32'를 새긴 액체 수소 연료차였다. 이 차량은 경주장 300바퀴를 돌고 멈춰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정비를 받은 뒤 완주했다. 도요타 팀은 이 경주를 테스트 베드(Test Bed) 삼아 수소차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 예로 올해는 내연 기관차 엔진에 수소를 분사하는 펌프 기술을 발전시켰다. 왕복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바꿔 구동축에 토크(Torque·돌림힘)를 전달하는 부품인 크랭크의 베어링(축을 회전시키는 부품)을 두 개로 늘렸다. 덕분에 24시간 내 두 차례 교환해야 했던 부품을 바꾸지 않아도 됐다. 또 차체에 얹는 액체 수소탱크를 원통형에서 타원형으로 바꿔 항속 거리를 두 배 늘렸다. 부품 교체 횟수는 줄었는데 연료는 더 많이 쓸 수 있으니 경주 중 차량 정비 시간도 아끼는 셈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대립 관계 아냐, 고객과 시장이 선택할 것"
이 차를 가장 먼저 탄 운전자는 다름 아닌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68) 회장. 그는 경주 직전 카 레이서 복장 차림으로 한국 취재진을 만나 "(도요타는) 모터스포츠용 차량을 바탕으로 좋은 차량을 만들려고 한다"며 "도요타는 모든 종류의 차량을 선택지로 준비하는 회사"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대부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집중할 때 하이브리드차에 무게 중심을 두고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요타 엔지니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 기술을 만들며 이를 적용하는 실험장으로 모터스포츠를 적극 활용하는 셈인데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 바로 아키오 회장이다. 심지어 그는 2007년 부사장 시절 안전 문제를 걱정한 회사 측 반대에도 도요타를 내세우지 않고 '모리조'란 가짜 이름으로 경주에 참가했다. 이후 '가주 레이싱'(Gazoo Racing) 팀과 루키 레이싱 팀을 만들었다.
모터스포츠가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전기차(EV), 가솔린차를 동시에 개발하는 도요타 '멀티 패스웨이'(Multi Pathway·전방위) 전략 고수의 주춧돌이 된 셈이다. 그 결과 도요타는 세계 전기차·배터리 시장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아키오 회장은 "전기차 아니면 다른 선택 사항(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 식의 대립 구조로 보기 쉽지만 고객과 시장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선택 사항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적은 이산화탄소(CO₂)"라며 "빨리 탄소 저감에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액체수소연료차에 탄 그는 40분 넘게 경주장 열여덟 바퀴를 돌았다.
“현대차와 상품 경쟁하지만 미래 대비는 협력 관계”
이 같은 도요타의 움직임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 위협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신기술 개발을 놓고 경쟁 회사와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곤 한다. 25일 찾은 경주장 인근 후지 모터스포츠 포레스트에는 일본 자동차공업협회 소속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2023년 7월 19, 20일 이곳에 모여 탄소 중립에 협력할 것을 서약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도요타, 쓰바루, 마쓰다는 28일에도 소형 엔진의 탄소 포집·바이오 연료 사용 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겠다는 성명을 냈다.
도요타는 한국 업체와도 신기술 개발에 협력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25일 경주장에서 도요타 가주 레이싱의 도모야 다카하시 사장은 '현대차의 수소차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나'라는 한국 취재진 질문에 "저희(도요타)가 수소 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차량에) 어떤 에너지를 쓸지, 파워트레인(차량 구동계)을 쓸지는 고객이 판단한다"며 "현대차뿐만 아니라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기술 개발하는 것에는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수소기술과 관련해 (도요타가) 현대차, 포드와 기술 격차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차와 도요타 모두 상품을 놓고 경쟁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데는 협조하는 관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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