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레서,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
해 질 녘까지 이곳에 머무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 따뜻한 아름다움이 기괴한 신비로움으로 변형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광장이 어둑해지면서 한가운데 반짝거리는 한줄기의 물결은 마치 트래버틴 평원에 놓인 은빛 길 같다. 그 길은 우리를 일몰 쪽으로, 건물의 서쪽 끝으로 안내한다.
-현장에서: '소크 생물학 연구소'
직관적이고 시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을 다룬 평전이 나왔다. 논픽션 작가이자 미국 문학 전문지 스리페니리뷰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웬디 레서는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에서 루이스 칸의 삶과 건축을 따라간다. 흡사 칸의 건축물처럼 직관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구성부터 일반적이지 않다. 칸의 생애와 업적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1974년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1901년 '출생'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에서 시작해 '시작'으로 끝나는, 말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이야기다. 이는 존재의 근원을 강조했던 칸의 건축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칸의 건축은 두꺼운 벽과 그 틈새로 빛을 담은 중세 건축을 닮았다. 피라미드나 파르테논처럼 시간을 초월한 건축물을 만들고, 사람이 그 안에서 공동의 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생의 건축 신념이었다. 인터뷰, 일기와 메모, 강연, 노트와 연구 문헌 등 방대한 자료를 역순으로 조합해 만든 시간 초월의 서사는 시간에 갇히지 않고 재료와 공간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던 칸의 철학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현장에서'라고 이름 붙은 에세이에서는 칸의 건축 업적을 깊이 파고든다. 칸은 반세기 동안 대략 235개의 설계를 했고 이 중 81개가 실행됐다. 저자는 1952년 이후 완성된 40개의 작품 가운데 손에 꼽을 수 있는 '소크 생물학 연구소' '킴벨 미술관'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인도 경영연구소'를 직접 가보고 답사기를 남겼다. 상세한 정보와 현장성이 어우러지면서 단숨에 칸의 건축물 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내외부를 작가와 함께 거닐며 몸의 움직임을 통해 빛과 형태, 질감을 발견하고자 했던 건축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시간이 멈춘 듯 계단과 광장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예술적 본질을 추구했던 건축가의 진가를 확인할 수도 있다. 킴벨 미술관의 고측 창에 드리워진 빛과 은빛 표면의 역할, 소크 프로젝트에서 콘크리트가 완벽한 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고 콘크리트에 깊이 빠지게 된 일, 예일대 아트 갤러리의 기하학적 천장을 설계하는 과정 등 평전 곳곳에 숨은 에피소드는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끝까지 넘기게 하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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