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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의 속도

입력
2024.06.26 20: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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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얼굴이 안 보인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험담은 퍼트린 사람, 들은 사람, 대상이 된 사람까지 세 사람을 죽인다"는 탈무드의 문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얼굴이 안 보인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험담은 퍼트린 사람, 들은 사람, 대상이 된 사람까지 세 사람을 죽인다"는 탈무드의 문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험담은 살인보다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퍼트린 사람, 들은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까지.” '탈무드'의 가르침처럼 말은 참 무섭다. 누군가가 미워서 작정하고 한 말이든, 그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든, 그 말로 인해 일어날 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중국 동진의 9대 왕 사마요(362~396)는 애첩 손에 죽었다. 주색잡기에 빠져 살았던 군주로 알려진 인물이다. 사달이 난 것도 술김에 내뱉은 한마디 때문이다. "당신도 이제 늙었군. 진즉에 내칠걸." 중국 역대 왕 중 가장 어이없는 죽음일 게다. "우리 아이는 왕의 DNA", "민중은 개돼지" 등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했던,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문득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도 화를 키우는 막말들이다.

함부로 내뱉은 말의 파문은 상상 그 이상이다. 파문과 파장. 글깨나 쓴다는 이들도 헷갈려 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파문’은 어떤 일이 다른 데에 미치는 영향으로, ‘파장’은 충격적인 일이 끼치는 영향 또는 그 영향이 미치는 정도나 동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 사전상으로는 거의 같은 의미다. 그런데 파문과 파장은 뜻이 확연히 다르므로 잘 구분해 써야 한다.

파문(波紋)은 수면에 이는 물결의 모양이다. 잔잔한 호수나 강, 바다에 돌멩이를 던지면 수면 위에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데, 이때의 무늬를 말한다. 파문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바람, 비, 물고기 움직임 등 외부 원인으로 만들어진다. 평화롭던 일상에 사건이 터지면 사회가 술렁인다. 이 상황을 수면에 물결이 이는 것에 빗대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이 일었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파문은 어떤 일의 영향으로 사회가 술렁거리고 혼란스러워지는 상태를 뜻한다.

파장(波長)은 물결이 만드는 마루와 마루, 혹은 골과 골 사이의 거리다. 한마디로 파문의 길이가 파장이다. 파문이 크면 파장은 길어진다. 순서상 파문이 일고 나서 파장이 생긴다. 따라서 ‘파장이 일어났다’라는 표현은 이치상 맞지 않다. 파문은 (불러)일으키다, 휩싸이다 등의 서술어와, 파장은 ‘긴’, ‘짧은’ 같은 수식어와 어울린다.

말[言]과 말[馬], 어느 쪽이 더 빠를까? 공자는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고 했다.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의 속도도 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으로 치면 스포츠카보다도 말이 빠르다는 얘기다. 특히 "쉿!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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