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주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돌풍을 일으키며, 유럽 정치판이 뒤흔들리고 있다. 유럽 극우 양대 세력인 유럽보수와개혁과 정체성과민주주의가 연대할 경우 제3당에 오르게 된 것이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연합 득표율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소속 당의 2배를 넘어서자, 마크롱 대통령은 국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독일에서도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 득표율이 극우 독일대안당에 뒤졌다.
□ 서구에서 극우의 부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대 난민 대량 유입으로 인종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친환경 정책 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피로감 등이 쌓이고,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세계화를 지지하는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민자 추방, 무역장벽 강화 등으로 노동자 농민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극우 포퓰리즘이 차근차근 세를 넓혀왔다.
□ 급기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프랑스 마리 르펜이 정권을 잡거나 유력 대통령 후보로 성장하는 등 극우 포퓰리즘은 주류 정치를 속속 장악하고 있다. “파시즘 악몽이 100년 만에 부활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평론가는 극우 포퓰리즘과 과거 파시즘의 공통점을 과거와 전통 숭배, 자기 진영 비판에 대한 적대감, 차이에 대한 공포, 인종차별, 민족주의, 음모론 맹신, 권력욕, 남성우월주의라고 지적한다.
□ 영국 역사가 게리 거스틀은 최근 번역된 ‘뉴딜과 신자유주의’에서 정부를 문제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정치 질서’가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좌우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힘을 잃은 후 이를 대체할 정치 질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 생기는 혼란을 우려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극우 포퓰리즘이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마틴 울프는 “역사가 반복되지는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언급하며, 세계가 지금 각운을 맞추는 중이니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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