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을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을 경정(수정)했다. 최 회장 측이 재산 분할 판단에 기초가 되는 수치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 것을 수용한 조치다. 이를 반영하면 1조3,8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산분할액 지급액 산정도 뒤집힐 공산이 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 결과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이 사건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법 가사2부는 어제 오후 판결 경정 결정을 내리고 최 회장과 노 관장 양측에 정본을 송달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애초 판결문에서 1994년 11월 최 회장이 취득할 당시 대한텔레콤(SK C&C 전신) 가치를 주당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는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기간별 가치증가분을 비교해 최 선대회장의 회사 성장에 대한 기여 부분을 12.5배, 최 회장은 355배로 판단했다.
재판부가 판결 경정에 나선 건 두 차례 액면분할이 주당 기업 가치 산정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최 회장 측의 주장을 수용하면서다. 최 회장 측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액면분할을 고려하면 최 선대회장이 별세하기 직전인 1998년 5월 주당 가치는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최 선대회장의 기여분은 125배로 10배 늘어나는 반면, 최 회장 기여분은 35.6배로 10분의 1 줄어든다는 것이다. 액면분할 영향을 누락했던 재판부가 부랴부랴 판결을 고친 것이다.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은 마당에 재산분할액 산정의 기초가 된 전제가 바뀐 만큼 논란은 불가피하다. 1조3,800억 원의 재산분할 주문에 영향이 없을 수도, 클 수도 있는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자산 형성에 최 회장의 기여가 훨씬 큰 자수성가형이라는 판단의 전제가 뒤바뀐 것”이라고 주장하고, 노 관장은 단순 오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더구나 단독 재판부도 아닌 합의부 재판부에서 주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결정적 오류를 내 혼란을 초래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바닥에 추락한 사법부와 재판의 신뢰를 더 훼손하는 일이다. 이번 판결은 불법자금의 상속까지 인정하는 등 다른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았다. 대법원은 신속한 상고심 판결로 혼란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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