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팔레스타인 시위 전후 학내 혐오 급증
미 교육부 "뉴욕시립대·미시간대 대처 미흡"
온라인 괴롭힘, "테러리스트" 낙인 등 사례
표현의 자유 vs 학생 보호 "균형 어려워"
"내 강의가 마음에 들었나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 한 유대인 학생은 수업에서 친(親)팔레스타인 주제를 다룬 대학 강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읽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24시간짜리 게시물)를 눌러봤다. 곧 울린 태그 알림에 그는 깜짝 놀랐다. 강사는 학생이 스토리를 조회한 화면과, 학생의 프로필에 걸린 이스라엘 국기를 캡처해 올렸다. "강의가 마음에 들었냐"는 빈정거림과 함께 학생의 계정도 태그했다. '강의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 학생이 내 계정까지 찾아와 염탐했다'고 여러 팔로어에게 알리며 저격한 셈이다.
학생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학교 측에 신고했지만, 대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대체로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공간"이라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 연방 교육부가 17일(현지 시간) 일부 미 대학이 유대인·무슬림 학생을 겨냥한 학내 혐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미국 대학가에서 가자지구 전쟁을 계기로 급증한 혐오 발언에 관해 조사 중인 교육부가 내놓은 첫 결론이다.
"미시간대·뉴욕시립대, 학생 보호 실패"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연방 교육부는 최근 수년 동안 미시간대와 뉴욕시립대(CUNY)가 유대인·무슬림 학생 모두 적절히 보호하지 못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 이후 미국 대학에서 유대인·무슬림에 대한 혐오 발언 등이 급증한 가운데, 미국 교육부는 각 대학별로 최근 수년간 일어난 학내 반유대주의와 무슬림 차별 사건 수십 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두 대학에 대한 이번 평가는 처음 나온 결과로, 앞으로 다른 대학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하게 된다.
미 교육부는 두 대학이 유대인·무슬림 학생이 겪은 괴롭힘과 차별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봤다. 주요 사례로는 ①미시간대 앤아버캠퍼스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해방"을 외친 학생에게 대학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건 ②미시간대 학생이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다가 "테러리스트 친구(팔레스타인인들)가 있다"며 조롱당했으나 대학은 잘잘못을 가리는 대신 '회복적 서클'(restorative circle·갈등 당사자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만 운영한 사건 ③강사에게 조롱당한 유대인 학생 사건 등이 거론됐다. 미시간대에서 75건, CUNY에서 9건의 사건이 지적됐다.
"표현의 자유" vs "구성원 보호"… 골머리 앓는 대학
앞서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는 유대인과 무슬림 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논쟁이 잇따른 데다, 지난 4월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확산하면서다.
WP는 "이번 조사 내용은 표현의 자유와 괴롭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대학의 곤경을 보여 준다"고 짚었다. 학문의 장인 대학에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학내 구성원을 혐오로부터 보호하라는 요구는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폈던 하버드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반유대주의'라는 뭇매 속에 사임하기도 했다.
미겔 카르도나 교육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슬프게도 최근 몇 달간 매우 우려되는 일련의 사건을 목격했다"며 "대학 캠퍼스에는 혐오가 설 자리가 없다"고 밝혔다. 미시간대와 CUNY는 문제제기된 사건을 다시 살펴보고, 학내 구성원이 인종과 출신 국가·민족으로 차별당하는 경험을 조사하는 등 조직문화 진단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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