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표, 의료계 대책위 참여 거부
의협 구심력 와해, 대표성 논란 재점화
개원의 휴진율 저조, 의협 리더십 흔들
무기한 휴진 선언에 내부 반발도 격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8일 전국적 휴진으로 대정부 투쟁 기치를 올렸지만 예상보다 낮은 참여율에 내홍까지 폭발하면서 진퇴양난에 처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와 휴진 병원 불매운동, 환자단체 온라인 피케팅 등 외부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의협은 19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등 주요 의사단체 대표자들과 비공개 연석회의를 가졌다. 의협 산하 각 시도의사회 대의원회까지 두루 포함하는 ‘범의료계 대책위’ 구성 등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대위는 20일 발족할 예정이지만 전공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미 4월 29일 의협 회장, 부회장, 이사진을 만난 자리에서 거절했다”며 대책위 공동위원장직 제안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과 임현택 의협 회장 간 파열음도 계속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같은 글에서 최근 임 회장이 일부 전공의가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전공의 문제에서 손 뗄까” “죽어라 지원했더니 컴플레인(불만)만 가득하다” 등 불쾌감을 내비친 사실을 거론하면서 “현 사태에 임하는 임 회장의 자세가 드러났다”고 각을 세웠다.
대전협 비대위는 2월 20일 집단 이탈 당시 발표한 ‘7대 요구안’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면서 사실상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의대 증원 백지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폐기, 전공의 대상 명령 철회 및 정부 사과 없이는 복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증원안 재논의, 정책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 등 의협이 내건 ‘3대 요구안’에 대해선 “명백한 후퇴”라며 선을 그었다.
의협이 전면 휴진을 조직화하며 의사계 구심점 역할을 자임했지만 의정 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휴진 바로 다음 날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한 형국이다. 더구나 의협이 대정부 소통 단일 창구를 자처하며 내놓은 협상안을 전공의들이 거부하면서 의협의 협상력 약화도 불가피해졌다. 더구나 박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만났고 대화는 할 만큼 했다. 추가적인 대화는 무의미하다”면서 의정 협상 필요성 자체를 부정했다.
의협과 의대 교수들의 연대도 허약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각 수련병원 교수 비대위가 개별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면서 원칙적 차원에서 의협과 협력하고 있지만, 서로 이해관계는 엄연히 다르다. 일례로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장기적 의료개혁에 무게를 두고 정부에 ‘상설 의정 협의체’를 요청하는 반면, 의협은 법정단체 지위를 강조하며 정부에 일대일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비대위 관계자는 “의협과 긴밀하게 소통은 하고 있으나 의협은 개원의 중심이라 대학병원 교수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의사들이 의협 중심 단일대오에 합의했다는 의협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휴진 첫날 열린 심포지엄에서 “실천력 있는 행동 대신 무대책에 가까운 책임 없는 행동을 하며 박 위원장과 말싸움이나 하는데 이런 한심한 시간이 너무 안타깝다”며 의협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임 회장이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27일 무기한 휴진 돌입을 선언한 것을 두고도 내부 반발이 크다. 사전에 임원들과 협의되지 않은 돌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 회장은 입장문을 내고 “무기한 휴진은 임 회장 1인의 깜짝 쇼로 발표할 내용이 아니다”라며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회무에 우려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기대에 못 미친 휴진 참여율도 임 회장과 의협의 리더십을 흔드는 분위기다. 의협은 휴진 관련 투표에서 ‘강경 투쟁 지지’ 응답자가 90.6%(6만4,139명)로 ‘역대급’이었다고 자부했으나, 정부가 집계한 휴진율은 14.9%로 2020년 총파업 당시 첫날 휴진율 32.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평상시에도 개원의 휴진율이 6~7%인 점을 감안하면 휴진 열기가 그리 뜨겁진 않았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 회장의 ‘무기한 휴진’ 발언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환자를 외면한 병의원 명단 공개와 이용 거부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선언했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휴진 장기화 저지를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며 온라인 피케팅을 시작했다.
정부도 전날 의협 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의협에 조사관을 보내 집단 휴진 강요 의혹 관련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협을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위반’으로 신고하고, 각종 증거자료 등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의협은 입장문을 통해 “회원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신성한 투쟁 행위를 의협의 불법 진료거부 독려로 보는 것은 수만 의사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를 모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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