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멜리사의 달콤한 케이크’라는 제과점을 운영 중인 아론 클라인과 멜리사 클라인 부부. 이들은 11년째 ‘양심의 자유’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3년 동성 커플의 결혼 케이크 주문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부한 게 발단이 됐다. 고객 차별을 이유로 기소돼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2019년 미 연방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그러나 하급심이 다시 유죄 판결을 내리고 대법원이 또다시 뒤집으면서 부부는 긴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직업윤리’와 ‘양심의 자유’는 때때로 상충한다. 해당 직업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마음속 신념이 정면 충돌할 때다. 법관들마저 판단이 엇갈리는 클라인 부부의 사례처럼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와의 약속인 직업윤리를 어기는 핑계로 ‘양심의 자유’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영향력이 큰 직군일수록 그런 행태를 보인다.
□가장 먼저 의사들을 꼽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지키겠다고 선서한 직업윤리가 있다. 굳이 요약한다면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기 △환자의 사생활 보호 △환자의 비밀보호 △의사보다 환자의 이익 우선하기 △의료자원의 절약 등이다. 요즘 일부 의사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투쟁’ 등 양심의 자유를 연상시키는 주장을 내세우며 진료거부 등 단체 행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직업윤리를 외면하기 위한 핑계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국회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22대 국회는 국익을 우선한다는 직업윤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과도한 입법, 이 대표를 향해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쏟아내는 야당 의원들이 특히 그렇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밝힌 뒤, 제46조 제2항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다. 일반 시민의 양심은 직업윤리와 따로 움직일 수 있어도, 국회의원의 양심은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직업윤리와 배치될 수 없다는 엄중한 주문이다. 국회의원의 당파적 행위는 직업윤리와 양심을 동시에 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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