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의혹 라이즈: 사건 전개 과정]
모든 동기를 설명하는 정황: VIP의 격노
대통령실 직간접 개입의혹 갈수록 커져
'대통령→용산 떠들석→사건반전' 반복
편집자주
다시 여름이,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7월 집중호우 때 해병대 병사가 거친 물살에 휘말려 순직했습니다. 그 죽음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바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터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해 7월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채 상병 순직 후 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은 왜 사단장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누가 과연 수사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잘 모르셨다면, 한국일보의 트릴로지 기사만 보면 전모를 다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나눠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의 발단 부분을 살펴보는 기사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①: 박정훈은 어쩌다 항명수괴가 되었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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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기사에서 병사 순직의 경위를 캐던 수사 책임자가 '항명 수괴'로 낙인 찍힌 과정을 살펴봤다. 한 숭고한 병사의 희생이 '항명'과 '외압' 같은 군 내부의 반목으로 변질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선, 다시 시계를 지난해 7월 31일로 돌려야 한다. 이날이 바로, 수사 외압 의혹에서 불거진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수도 있는 'VIP(대통령) 격노설'이 불거진 날이어서다.
VIP 격노로 이첩 보류됐다?
"김계환 사령관이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수사단장이 '정말 VIP 맞습니까?' 하자,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해 8월 28일 군검찰에 낸 진술서를 통해, 대통령의 그림자가 최초로 드러났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뿐 아니라, 국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사건 이첩 보류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VIP 격노설을 퍼뜨린 사람으로 지적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뭐라고 해명했을까. 김 사령관은 이튿날 군검찰 진술에서 "피의자가 항명 사건을 벗어나기 위해 지어내고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의 주장은 망상"이라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VIP 격노설'은 생명력을 유지하게 됐다.
처음엔 박 대령만 'VIP 격노설'을 들은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계환 사령관이 VIP의 심기를 해병대 내부에서 여기저기 다 얘기하고 다녔을 단서들이 포착됐다. 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박 대령뿐 아니라, 다른 해병대 고위 간부들이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설을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IP 격노설을 얘기한 적 없다"는 김 사령관 등의 주장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VIP 격노설을 거짓말이라고 했던 김 사령관은 21일 국회 청문회에 이르러선 "공수처 수사를 받는 사안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며 발을 빼기에 이른다.
격노설·외압설을 뒷받침하는 통신기록
여기에다, 대통령실과 군 관계자들이 수사외압 의혹 기간에 주고받은 통신기록을 보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내선 전화를 받고, 직후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은 이후 박 전 군사보좌관·이 전 장관 등과 통화했고, 유재은 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이첩 방법이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통신기록을 확인한 박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채 상병 사건 관련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고, 이 격노가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실 내부와 국방부 등으로 전달돼 이첩 보류 지시가 이어졌다고 의심한다.
대통령이 격노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군에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분노는 수사외압 의혹을 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를 설명하는 동기(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 대령 측은 '격노설'의 최초 전달자로 이 전 장관 또는 임 전 비서관을 의심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57분 박 전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김 사령관과 연락을 했다. 박 전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이후에도 수차례 김계환 사령관과의 통화 기록이 남아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장관이 들은 얘기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을 타고 전달된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임 전 비서관의 경우 같은 날 오후 2시 56분 이 전 장관과 11분 넘게 통화했고, 같은 날 오후 5시 김 사령관과도 3분 넘게 연락했다.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회의에 참석한 인물이다.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고, 이 전 장관은 "외부 개입 없이 독자적 판단으로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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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기록 회수·재배당도 관여?
통신기록이 가리키는 건 이첩 보류 지시 전후의 수상한 흐름뿐만이 아니다. 경찰에 인계한 사건 기록 회수와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착수에까지, 대통령실 관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통화기록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날은 지난해 8월 2일이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이 이 전 장관 지시를 어기고 임성근 전 사단장 등의 혐의를 인정한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인계한 시점이다. 수사단이 이날 오전 11시쯤 사건 기록을 넘긴 뒤, 윤 대통령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18분 동안 이 전 장관과 통화했고, 오후 1시 25분에는 임 전 비서관과 4분 이상 통화를 나눴다. 그 전후 임 전 비서관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유 관리관 등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도 경찰 측과 사건 기록 회수와 관련해 소통했다.
유 관리관은 이날 오후 1시 51분 사건 기록 회수와 관련해 경북경찰청 수사부장과 통화했고, 결국 국방부 검찰단은 저녁 7시 20분쯤 경찰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 데에 성공한다. 임 전 비서관, 이 전 비서관, 유 관리관은 사건 기록 회수 전에는 잦은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회수 직후 연락이 뚝 끊겼다. '미션'이 성공(회수 완료)했음을 보여주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군인 사망 등의 원인이 되는 범죄 수사를 민간경찰이 맡기로 한 뒤 이첩 뒤 회수는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실이 전방위적으로 사건 기록 회수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 전 장관과 유 관리관은 "국방부 검찰단의 자체 판단으로 사건 기록이 회수됐다"고 설명해왔다.
윤 대통령의 통화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건 재검토에 착수하기 전날에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8일 오전 7시 55분 이 전 장관과 48초간 통화했다. 이후 임 전 비서관은 나흘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이 전 비서관 및 박 전 군사보좌관과 연락을 재개했다. 박 전 군사보좌관은 이날 오후 국가안보실에 파견을 나가있던 군인과 10여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뒤 박경훈 전 조사본부장 직무대리와 번갈아 통화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 내선 전화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받은 이 전 장관은 통화 직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해,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는 걸 보류하고 언론브리핑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국방장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내선 전화 발신자도 윤 대통령 혹은 윤 대통령 지시를 바로 받은 청와대 참모라고 가정한다면, ①이첩 보류 지시 ②사건 기록 회수 ③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착수 등 수사 외압 의혹의 결정적 장면마다 '윤 대통령의 통화→군 수뇌부와 대통령실의 집중적 연락→사건 흐름의 극적인 변화'라는 패턴이 매번 관찰되는 것이다. 단순히 핵심 관계자들의 전화 횟수나 빈도가 많아서, 이 사건을 '수사 외압 의혹'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현재까지는 외압의혹이 주로 통화기록을 통한 '정황 증거'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실제로 그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아직까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의심을 뒷받침해주는 진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재은 관리관은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임기훈 전 비서관이 '경북경찰청에서 저에게 전화 올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진술했다. 임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2일 오후 1시 42분 유 관리관과 2분 이상 통화했고, 유 관리관은 그 직후 경북경찰청과 전화를 했다. 결국 대통령실이 경찰에 기록 회수에 개입했을 거란 정황은 확인된 셈인데, 공교롭게도 임 전 비서관은 유 관리관과 통화 직전인 오후 1시 25분 윤 대통령과 4분 넘게 통화했다. 윤 대통령이 기록 회수를 지시했거나 미리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 관리관의 공수처 진술 또한 결이 다르지 않다. 유 관리관은 올해 4~5월 공수처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 이시원 전 비서관과의 연락에 대해 "군 사법정책에 관해 논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장관이 지난해 7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한덕수 국무총리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최소 40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본보 보도에 대해 "잼버리 사태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 것"이라는 정부 측 해명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유 관리관이 사건 기록 이첩 방법 등에 대해 이 전 장관에게 보고를 했던 만큼 이 전 비서관과도 관련한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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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자 축소에 항명 수사까지?
박 대령 항명 수사에 대통령실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확인이 필요하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8월 3일 오후 2시쯤 박 대령을 압수수색했는데, 공교롭게도 압수수색 전후로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과 세 차례에 걸쳐 총 7분간 전화를 주고받았고, 이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했다. 유 관리관, 이 전 비서관,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저녁에도 연쇄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전 검찰단장이 지난해 8월 8일 임 전 비서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6분 넘게 통화한 흔적도 발견됐다.
비록 통신기록은 확보되지 않았으나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책임이 있는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줄여 발표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공수처는 이미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로부터 박 전 군사보좌관이 혐의자 축소를 압박하는 등 조사본부 뜻만으로 재검토가 흘러간 건 아니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외압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공수처가 최대한 물증을 많이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수처는 이첩 보류 지시-사건 기록 회수-혐의자 축소 등 수사 외압 의혹의 결정적 사건마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특히 'VIP 격노설'의 경우에는 전달 통로로 꼽히는 김계환 사령관 또한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은 내용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관계자를 조사해 윤 대통령이 격노를 한 게 맞는지, 격노를 들은 다른 사람은 없는지 등을 가려내야 한다. 하지만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은 엇갈리고 있고,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공수처 조사에서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통신기록만으로 각종 의혹을 밝혀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선 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공수처는 이를 위해 올해 초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해 자료를 확보하고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기초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김 사령관 등 해병대 고위 간부들과 유 관리관과 박경훈 전 직무대리 등 국방부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공수처는 사실관계를 더욱 면밀하게 파악한 뒤에 이른바 '윗선'인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종섭 전 장관, 임기훈·이시원 전 비서관 등을 소환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선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행위가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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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갑자기 드는 의문. 대통령실, 국방부, 군 관계자들은 왜 그렇게나 힘을 합쳐 채 상병 사망 책임자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박정훈 대령의 수사 결론을 무리하게 뒤집으려고 했을까. 대상과 범위를 미리 특정하지 않는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가 아니라면, 모든 범죄 의혹은 '왜'라는 동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가설이 바로 '임성근 구명설'이다. 특히 박 대령 측에서 이런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에 가해진 모든 압력이 임성근 당시 해병1사단장의 이름을 빼기 위함이었다는 의심이다.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3부작 기사의 마지막 편에서는, 바로 이 동기 부분을 살핀다.
※이 기사는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③: 누구를, 왜 지키려고 했던 걸까'로 이어집니다. 6월 23일 오전 10시에 출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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