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주기율표에서 수소 헬륨 다음에 위치한 원자번호 3, 리튬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이다. 리튬은 전기차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이차전지 주요 소재이자, 항공기용 특수 합금, 의약품 등의 유용한 재료라 세계 각국이 물량 확보를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어 ‘하얀 석유’라고 불린다. 리튬이 이렇게 귀중한 원소가 된 것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는 강한 반응성 때문이다.
□ 리튬은 조울증(양극성 기분장애) 치료제 주원료이기도 한데, 이 역시 강한 반응성 덕분이다. 매일 아침 사람 뇌의 뉴런 DNA에는 특정 단백질이 들러붙었다가 밤이 되면 떨어져 나가면서 생체리듬을 유지하는데, 그 단백질이 계속 붙어 있으면 생체리듬이 파괴돼 조울증을 일으킨다. 리튬은 인간 뇌 뉴런의 DNA에 들러붙어 있는 단백질을 떼어 놓는 역할을 해 생체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린다. 리튬이 함유된 지하수를 마시는 지역 주민 자살률이 평균보다 10배 이상 낮다는 연구도 있다.
□ 리튬의 강한 반응성은 치명적 위험이 되기도 한다. 리튬은 주변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 중 산소나 질소와 왕성하게 반응해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열을 방출한다. 또 가루가 피부에 닿으면 수분과 반응해 화상을 입힐 수 있고, ‘열폭주’가 일어나면 유독 가스를 발생시킨다. 이렇게 예민한 리튬은 휴대폰, 노트북, 전기차 배터리의 주 소재로 우리 주변에 자리 잡았지만, 때에 따라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돌변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 20여 명이 숨진 화성 아리셀 화재도 리튬에 잠재된 위험성에 대한 인식과 대비책 부족으로 인한 참사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호주 테슬라 에너지 저장장치에서 유사한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등 사전 경고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흘려 버렸다. 리튬 화재는 연소 확산을 저지하며 리튬이 산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마땅한 진화 방법이 없다. 일반인은 발화 초기 불을 끄려 시간 끌지 말고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하얀 석유’ 화재에 대처할 소방 시설 마련과 초기 대처 및 대피 교육이 시급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