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조선시대 형법에 '천살(擅殺)'이라는 단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함부로 죽인다'이지만 법적 의미는 조금 다르다. 부모를 죽인 원수를 죽이는 행위처럼 사적 제재의 성격을 지닌 살인을 가리킨다. '천살'은 법을 무시한 행위라는 점에서 국가로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형벌은 국가가 독점하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상윤리를 중시한 조선에서 자식이 부모를 위해, 노비가 주인을 위해, 아내가 남편을 위해 복수할 목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처벌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천살은 일반적인 살인보다 등급을 낮춰 처벌하는 것이 관례였다.
다산 정약용의 판례집 '흠흠신서'의 살인 사건에도 사적 제재에 해당하는 것이 적지 않다. 다산 역시 원칙적으로는 사적 제재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동기가 타당하면 폭넓게 용인했다. 정조도 마찬가지였다. 정조의 재판기록 '심리록'을 보면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감형 또는 석방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의살(義殺)', 즉 정당한 살인으로 간주하여 처벌은커녕 표창하기까지 했다. 충남 이산의 김계손 사건과 전남 강진의 김은애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계손은 아버지를 죽인 김수리봉을 1년간의 추적 끝에 찾아내어 칼로 찔렀다. 내장이 튀어나올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김수리봉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김수리봉은 이미 법의 판단을 받고 풀려난 사람이었다. 법을 무시한 김계손의 복수가 정당할 리 만무하다. 김은애는 자신이 음란하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노파를 열여덟 번이나 찔러 죽였다. 무고에 살인으로 대응한 김은애의 복수는 과도하다.
이처럼 김계손과 김은애의 복수가 정당한지는 의심스럽지만, 정조는 이들이 강상윤리를 바로 세웠다며 즉각 석방했다. 뿐만 아니라 김계손을 관직에 등용하고, 김은애를 열녀로 표창했다. 대중은 통쾌한 복수극에 열광했다. 하지만 사적 제재에 대한 관용은 법질서를 무너뜨렸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에게 돌아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사법 불신이 여기서 생겼다.
20년 전 일어난 밀양 집단 성폭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에 가해자들 신상이 공개되면서부터다. 피해자가 직접 복수에 나서는 것도 안 될 일인데, 제3자가 복수를 명분으로 사적 제재에 나서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다. '정의 구현'을 내세우지만 의도는 의심스럽다. 법의 판결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의 판결보다 복수극을 선호한다면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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