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성의 이슈메이커]
'기후위기 전도사'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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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한 달에 10일 정도 기후위기에 대해 강연한다. 이렇게 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1980년 연세대 천문기상학과에 간 건 "원하는 과엔 점수가 약간 모자랐는데 하늘 보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기상청에 취직한 뒤에도 마찬가지. "매일매일 날씨 맞히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겠는데" 전 지구적 기후위기라니, 한가한 얘기라고만 생각했다. 2005년 충남 태안 안면도에 있는 기후감시센터로 발령받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뚜렷한 온실가스 농도 변화를 두 눈으로 확인한 뒤 기후위기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조 전 원장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는 보고서, 즉 IPCC 보고서다. 1990년 이후 여섯 차례 발간된 IPCC 보고서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기후위기 관련 논문 10만여 건을 검토, 가장 핵심적 내용만 뽑아 1만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 둔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한 대신 놀랍도록 재미없고 가장 보수적으로 쓰인" 보고서다.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인 보고서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들여다본다. "발간 당시 과학 수준에서 가장 확실한 말들만 골라 모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오전 시간은 기후위기 관련 최근 외신, 주요 논문, IPCC 보고서 등을 서로 비교해가며 공부하는 데 쓴다.
지난 4월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도 참석했다. 우리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치 않다며 청소년기후행동 등이 정부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청구인 측 전문가 참고인 자격이었다. 이때도 가장 큰 무기는 IPCC 보고서였다. "변호인단이 'IPCC 보고서를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 역시 다르다'고 해주셨을 땐 보고서 읽을 때의 고생이 좀 잊혀서 좋았다"며 웃었다.
지난해 3월 발간된 IPCC 6차 보고서는 표지에다 한국의 전남 구례 지역에서 찍은 사진을 실어 작은 화제가 됐다. 조 전 원장은 그 사진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길 같은 게 보이는 듯한 광경. 좀 더 용기를 내보자는 제안이자 격려다.
개인적으론 2019년 낸 이후 10만 부 가까이 판매되면서 '조천호'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려준 '파란 하늘 빨간 지구' 완전 개정판도 준비 중이다. 고민은 원고를 쓰다 보니 자꾸 판이 커진다는 점. 빅히스토리, 기후위기, 미세먼지 등 주제별 시리즈로 내놓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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