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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세계가 놀란 최고급 0.5%의 '천삼(天蔘)'...30년 베테랑의 손과 기계가 빈 틈 없이 골라낸다

입력
2024.09.04 13:00
수정
2024.09.04 13:5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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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 기지 KGC인삼공사 충남 부여공장
홍삼 원료 인삼, 밭에서 공장까지 8년
최고급 판별 위해 사람이 기계 보완
홍삼 농축액, 환 등 여러 제품에 활용
홍삼정·뿌리삼, 세계서 찾는 건기식

KGC인삼공사와 계약을 맺은 인삼밭 모습. KGC인삼공사 제공

KGC인삼공사와 계약을 맺은 인삼밭 모습. KGC인삼공사 제공


한국인이 자주 찾는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중 하나인 홍삼은 한국전쟁 당시 '5인의 특공대'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즐기기 어려웠을 테다. 고려시대부터 무역품으로 이름이 난 '고려 인삼'을 홍삼의 형태로 제조한 건 1,899년 고종 때다. 당시 찌고 말린 인삼을 뜻하는 홍삼의 엑기스만 뽑은 농축액 제품을 국가 주도로 개발했다. KGC인삼공사 대표 제품 정관장 홍삼정의 시초다.

홍삼 생산 핵심지였던 개성 전매지국이 전쟁 발발 이후인 1951년 충남 부여군으로 옮기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개성의 인삼 상인들이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홍삼 우량 종자인 '개성 인삼'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 그때 북한 지역인 개성 인근 개풍군에 보관돼 있던 개성 인삼을 목숨 걸고 가져온 게 특공대였다. 이렇게 확보한 질 좋은 인삼으로 1950년대 만들기 시작한 각종 홍삼 제품은 이제 국내는 물론 40여 개 수출국에서 대표 건기식으로 자리 잡았다.

1956년부터 68년 동안 홍삼 제조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인삼공장 부여공장을 8월 28일 오후 방문했더니 홍삼 특유의 건강한 향이 서서히 느껴졌다. 인삼이 이런 홍삼으로 진화하기까진 7, 8년이 걸린다. 우선 인삼공사가 밭을 고르는 데만 1, 2년 걸린다. 전국 곳곳에서 계약 맺은 농가의 밭이 인삼을 키우기 적절한지 토양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6년근 인삼, 찌고 말려야 홍삼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직원이 천삼, 지삼, 양삼 등을 가리기 위해 조직 선별을 하는 모습. KGC인삼공사 제공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직원이 천삼, 지삼, 양삼 등을 가리기 위해 조직 선별을 하는 모습. KGC인삼공사 제공


이 밭에서 6년 동안 빛을 쬐고 빗물을 머금으며 자라야 홍삼으로 제조하기 적당한 인삼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어리지도 않고 노화가 진행되지도 않은 가장 건강한 상태의 '6년근 인삼'이다. 가을 내내 부여공장에 몰리는 4,000톤(t)의 6년근 인삼을 씻고(세삼), 찌고(증삼), 말리면 비로소 붉은 빛이 도는 홍삼이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홍삼에는 면역력을 높여주고 피로 해소에 도움 주는 사포닌 등의 성분이 가득 담긴다.

부여공장은 바싹 건조한 홍삼을 연중 내내 제품으로 가공한다. 대표 공정은 뿌리삼, 홍삼정 제조다. 50m 길이의 뿌리삼 라인에선 수많은 홍삼 가운데 하늘이 내린 '천삼', 땅이 준 '지삼', 질 좋은 '양삼'을 추려냈다. 천삼은 전체 물량 중 0.5%밖에 없는 특급 홍삼이다. 지삼, 양삼도 각각 상위 2%, 10% 안에 드는 최고급에 속한다.

홍삼은 사람 생김새처럼 몸통, 다리가 바지런하고 내부가 깨끗하게 꽉 차있을수록 천삼에 가까워진다. 겉과 속이 모두 예쁘고 튼튼한 홍삼은 기계는 물론 사람 손길에 의해 가려진다. 먼저 근적외선 분광법(NIRS) 설비는 홍삼 안 조직을 꿰뚫어보고 등급을 매긴다. 92%의 적중률이다.


홍삼 포장지엔, 지폐처럼 위조 방지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직원이 가짜 또는 저품질 제품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한지로 싼 홍삼 제품에 도장을 찍고 있다. KGC인삼공사 제공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직원이 가짜 또는 저품질 제품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한지로 싼 홍삼 제품에 도장을 찍고 있다. KGC인삼공사 제공


추가로 어두운 암실에서 인삼공사 직원이 일일이 적외선을 쏴 천삼, 지삼, 양삼을 판별한다. 등급 산정을 100% 정확하게 하기 위해 사람이 기계를 보완하는 셈이다. 부여공장 직원 500명 중 단 7명만 수행하는 작업으로 30년 베테랑도 있다고 한다. 정밀 심사를 위해 분기마다 시험을 통과해야 암실에 넣을 수 있다.

포장 과정도 남다르다. 나무 상자에 담기는 십수 개의 고급 홍삼은 한지에 고이 쌓인다. 이 한지에는 가짜 또는 저품질 뿌리삼이 정품마냥 돌아다니는 일을 막기 위해 한국조폐공사의 위조 방지 기술이 들어있다. 또 포장 작업자는 자신의 이름이 새긴 도장을 정품 인증마크처럼 한지에 찍는다.

홍삼 농축액 제조 시설은 2,900㎡(약 877평)에 5개 라인을 갖췄다. 농축액 제조의 ①첫 단계는 홍삼을 물과 함께 달인 후 전분을 걸러낸다(추출). 이어 ②홍삼물이 '저온 감압' 과정을 거치면 수분이 날아가고 끈적끈적한 액체만 남는다(농축). 고온에서 물기를 없애면 알짜 성분인 사포닌까지 함께 증발할 수 있어 저온을 유지하는 게 비법이다.


40개국에 수출, 국빈 선물로도 활약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내 홍삼 농축액 제조 시설. KGC인삼공사 제공

KGC인삼공사 부여공장 내 홍삼 농축액 제조 시설. KGC인삼공사 제공


마지막으로 ③탱크에 5일 정도 두면 홍삼 농축액이 완성된다(숙성). 이 ④농축액은 곧장 홍삼정으로 제품화하거나 환, 스틱, 어린이홍삼 등 다양한 제품의 원재료로 쓰인다. 천삼, 지삼, 양삼만 넣은 프리미엄 농축액도 따로 있다.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홍삼 농축액은 직경 120cm, 높이 70cm의 커다란 솥에서 2주일 동안 주걱으로 저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제조하는 직원은 홍삼정을 만든다고 하여 '삼정 할머니'로 불렸다.

이렇게 공들여 생산한 홍삼정은 최근 10년 동안 누적 매출 2조600억 원을 거뒀다. 연평균 2,000억 원으로 전체 건기식 시장에서 점유율 3%를 차지하고 있다. 단일 품목 중에서 가장 큰 축이다. 천삼 등 뿌리삼은 국빈 방문 때 선물용으로 활약하는 등 국가대표 건기식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등 해외에서 수요가 크다. 지난해 뿌리삼 매출은 1,700억 원 규모다.

양경만 KGC인삼공사 수석브랜드 매니저는 "정관장 홍삼정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라며 "그동안의 노하우와 과학적 제조 기법으로 담아낸 홍삼정으로 세계인의 건강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여=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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