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건 전적으로 중앙은행이자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소비자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며칠 새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를 잇따라 올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발(發) 금리인상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하자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 사실상 대출량을 줄이라고 ‘압력’을 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 국민은행은 이달 초부터 주담대 신잔액코픽스 기준 변동금리를 기존 3.65~5.05%에서 3.78~5.18%로 높이는 등 가계대출 금리를 약 0.13%포인트 높였다. 하나은행도 가계 주담대 우대금리 폭을 0.2%포인트 낮춰 그만큼 금리를 올린 셈이 됐다. 문제는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동안 은행 자금조달 금리인 은행채 5년물의 경우, 연초 3.82%였던 게 지난 10일 3.38%로 무려 0.5%포인트 가까이 하락해 은행들은 그만큼 더 큰 예대마진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 대출금리 인상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은행들은 한은에서 돈(RP)을 빌릴 때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하지만, 그에 따른 ‘초과수익’은 중앙은행인 한은에 귀속된다. 반면, 기준금리에 변동이 없거나 시중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은행 대출금리만 올라가면 그에 따른 초과 이자수익은 고스란히 민간기업인 은행에 귀속된다. 즉, 최근 가계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이자 초과수익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고스란히 은행이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 가계대출 급증은 정부가 각종 저금리 특례대출을 늘려 ‘빚내서 집 사자’ 심리를 자극한 결과다. 그럼에도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은행에 가계대출 금리 인상을 압박해 결국 금융소비자는 은행 조달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더 높아진 금리로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한은은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창구지도’를 통해 정부가 대출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통화정책은 뒤엉키고, 절실한 금융소비자만 공연히 더 높은 이자 부담을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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