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비 오는 여름 밤, 마을 아이들이 한방에 모여 경쟁하듯 꺼내는 귀신 이야기 중 아직도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다. 한 아가씨가 역 앞에서 택시를 탄 뒤 우리 마을 어귀에 내리더니, 들판 너머 이웃 마을의 오직 한 곳 환하게 불 밝힌 집을 가리키며 "택시비는 저기 가서 받으라"고 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데 아가씨는 금세 어디론가 사라졌고, 기사가 허위허위 불 밝힌 집에 이르자,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이 "아가씨는 내 딸이고 오늘이 그 아이 제삿날"이라고 했다. 기실 아가씨가 내린 곳은 공동묘지로 가는 입구였다.
제삿날 택시 타고 제삿밥 먹으러 집에 온 아가씨 귀신 이야기다. 앞뒤 뜯어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훗날 대학에 가서 설화를 조사해보니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였다. 택시, 전깃불 밝힌 시골집 같은 소재로 볼 때 근대 문명기 이후 만들어진 전설인 것이 분명하다. 아가씨는 어느 저승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 역에 내렸을까? 오싹한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사히 집에 이르러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가씨는 아마도 생전에 착하게 살았나 보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가련한 아가씨 이야기가 있다. 경주 망덕사의 승려 선율(善律)이 저승에 불려 갔다. 부지런히 육백반야경을 만들던 참이었다. 저승지기는 선율에게 "네 수명은 비록 다 되었다만, 이루지 못한 착한 일이 있으므로, 마치고 오도록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마"라고 했다. 참 너그러운 저승지기이다. 저승 갔다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서 이것이 유일하다. 어쨌건 저승을 벗어나려는데, 한 아가씨가 나타나 서럽게 울며 말했다. "우리 부모가 금강사의 논을 몰래 가로채는 바람에, 제가 저승에 잡혀 와 오래도록 고통받고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빨리 돌려주라 하소서." 참 할 일 많은 선율이다.
이승에서는 선율이 죽어 무덤에 묻힌 지 이미 열흘쯤 지난 다음이었다. 돌아온 선율은 무덤 속에서 "나 살았다"고 사흘이나 외쳤다. 마침 지나가던 목동이 듣고 꺼내주었다. 선율은 아가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가씨는 죽은 지 15년이나 됐다는데, 부모는 잘못을 뉘우치고, 죽은 딸을 위해 불등(佛燈)을 밝혔다. 기차 타고 택시 타고 옛집에 이른 우리 마을 아가씨 귀신만은 못하지만, 이승으로 돌아가는 동네 스님을 만나 맺힌 한을 푼 경주 아가씨 또한 다행이다. 살아서 선업(善業)을 쌓았거나 죽어서라도 쌓으려 했기에 그런 줄 안다. 그러지 않으면 젯밥조차 못 얻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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