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정쟁에 가려진 심각한 국정 난맥
정책 불발•충돌•엇박자 방치된 듯 만연
정권 넘어 무능해진 정부에 염증 확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듯한 정쟁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지만, 윤석열 정부의 진짜 위험은 국민 사이에서 소리 없이 번지고 있는 국정 불신일지 모른다. ‘보수는 일은 잘하는데 부패해서 문제고, 진보는 깨끗한 것 같은데 무능하다’는 말은 옛날 얘기다. 요즘 알 만한 사람들 중엔 “보수라는 정권이 이렇게 어설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부가 누더기가 된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이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두고 일개 정치평론가와 아무 거리낌 없이 한 시간 가까이 미주알고주알 통화를 했다거나, 권력 언저리의 ‘듣보잡’ 양아치 같은 자들이 ‘VIP’를 입에 올리며 해병대 사단장 인사를 쥐락펴락할 듯 떠들고 다닌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건 권부의 한심하고 창피한 민낯이지만, 정권이 지나가면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금방 멀어질 웃기는 촌극에 불과하다. 정작 걱정스러운 건 그동안 누가 정권을 잡든, 멀쩡하게 작동해왔던 정부 곳곳에 심각한 고장 조짐이 잇달아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는 일사불란하고, 뭘 해도 대체로 매끄럽게 잘 해나가리라는 ‘관성적 믿음’이 형성될 정도로 그동안의 정부는 대체로 일을 잘 해왔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유치키로 하면 어떻게든 성공시켰고, 행사도 매끄럽게 진행했다. ‘하면 된다’만 떠든 게 아니라 지금 봐도 놀랍도록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정부가 작동한 결과였다. 하지만 현 정부는 새만금 잼버리대회에서 형편없이 죽을 쑤더니, ‘2030 부산세계엑스포’는 온 나라가 요란법석을 떤 게 창피할 정도의 압도적인 표차로 유치에 실패했다.
국제행사 한두 개만이 아니다. 심각하게 삐걱거리는 현상이 정책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급등 조짐마저 보이는 서울ㆍ수도권 집값 상황만 해도 일관성 없는 정책이 빚은 난맥상이다. 정권 초인 2022년 5월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집값 하향 안정이 (부동산정책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고금리에 원자잿값 인상으로 건설업계가 난관에 빠지고 부동산시장에 찬바람이 일자 정부는 사실상 부동산시장 부양 쪽으로 급선회했다. 각종 명목의 저금리 특례대출에 거래 촉진책이 가동됐다.
최근 장려와 규제를 오락가락하며 시장에 혼란을 일으킨 가계대출 정책도 따지고 보면 갈팡질팡 부동산정책에 따른 정책 엇박자인 셈이다. 조세정책은 ‘서민ㆍ중산층 시대’를 내세우고 있는 경제정책 방향과 충돌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근로자 실질소득이 정체ㆍ감소하는 상황에서 서민ㆍ중산층을 육성ㆍ지원하려면 세제 개편의 초점 또한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종부세(집값 상승에 따른 1주택자 과세 조정은 그렇다 해도)나 금투세 폐지를 중산ㆍ서민 지원책이라고 우기니, 국민 다수가 “이게 뭐하자는 건가”, 싶은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을 감안해도, 여가부 존폐 결정 지연이나 연금개혁 표류 또한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큰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총선은 참패하고 여당은 표류하는 가운데, 외교와 정책 현장 여기저기를 홀로 누비며 뭔가 성과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은 대통령의 ‘분투’조차 고깝게 보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직접 ‘대왕고래 프로젝트(포항 영일만 석유 시추 탐사 개발)’ 계획을 밝히자, 시중에서 되레 “대통령이 나서는 바람에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비아냥이 나돌았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신호다. 정쟁으로 뒤엉킨 정치판은 그렇다 쳐도, 삐걱거리는 정부 쇄신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개각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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