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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피격에 소환된 ‘밥 로버츠’

입력
2024.07.16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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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 '밥 로버츠'.

영화 '밥 로버츠'.

미국은 ‘암살의 나라’다. 많은 정치인들이 총탄의 위협에 놓여 왔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현대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이 대통령으로서는 첫 희생자였다. 제임스 가필드(1831~1881)와 윌리엄 매킨리(1843~1901), 존 F. 케네디(1917~1963)도 총에 맞고 숨져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를 포함해 로널드 레이건(1911~2004)까지 암살이 미수에 그쳐 목숨을 건진 대통령이 5명이기도 하다.

□ 대중문화에서 미국 정치인 암살을 다룬 작품이 여럿 있기도 하다. 1990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어쌔신’은 미국 대통령 암살범과 암살미수범 9명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영화 ‘사선에서’(1993)는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 전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에 맞서는 노장 경호원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분투를 그린다. 프랭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저지하지 못한 회한에 젖어 살아왔던 인물이다. 허구에 미국인의 역사적 기억을 각인한 영화인 셈이다.

□ ‘밥 로버츠’(1992)도 암살과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다. 보수 신인 정치인 밥 로버츠(팀 로빈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다.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하며 미국이 지녔던 옛 가치를 설파한다. 가수 출신이라 유세장에서 노래로 유권자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변변치 못한 집안 출신이면서도 스타의 면모를 갖췄으니 대중이 환호할 만도 하다. 유력 상원의원 후보였던 그는 어두운 비밀을 지녔다. 한 기자가 그의 감춰진 생활을 조금씩 밝혀내자 선거운동에 큰 타격을 입는다.

□ 로버츠는 의문의 저격사건을 거치며 지지율이 깜짝 반등한다. 지난 14일 암살을 겨우 모면해 되레 탄탄한 재선 가도를 달리게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로버츠는 백만장자에다 TV스타이기도 했던 트럼프의 인생을 닮기도 했다. 미국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로버츠처럼 사건을 꾸민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온다.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진보 성향 팀 로빈스는 “암살 시도를 부정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고 비판한다. 진영주의에 함몰된 자들을 향한 일갈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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