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조 임금도 MZ세대 못 막는다

입력
2024.07.29 04:30
27면
0 0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면신례'라는 관습이 있다. 조선시대의 혹독한 신참 길들이기다. 면신례는 과거 합격 직후부터 시작된다. 과거 합격자는 반드시 성균관 문묘에 참배해야 했는데, 여기에 합격자들을 가둬놓고 온갖 모욕을 준다. 얼굴에 진흙 칠하기, 옷에 물뿌리기, 벌거벗기기, 연못에 빠뜨리기, 담장 위로 올라가기 따위다.

합격자들이 거쳐야 할 곳이 또 있다. 대궐에 가서 임금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한다. 여기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합격자들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임금을 만난다. 혹독한 신고식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임금이 모를 리 없건만 본체만체다.

관청에 배속되면 본격적인 면신례가 시작된다. 신참들은 얼굴에 먹칠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채 한밤중에 무리지어 선배들 집을 찾아가 명함을 돌린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선배들을 모셔다가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갖가지 가혹 행위까지 감당해야 한다. 갓을 부수고 옷을 찢는다. 억지로 술을 먹이고 연못에 빠뜨린다. 손찌검은 예사다. 몽둥이 찜질도 서슴지 않는다.

면신례는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국왕도 면신례를 즐겼다. 영조는 면신례에 호의적이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이유였다. 만년에는 직접 면신례에 참여했다. 어전에 나온 과거 합격자와 신임 관원의 얼굴에 먹칠을 하라고 분부했다. 정조도 마찬가지였다. 면신례를 생략하면 문제 삼았다. "합격자를 불러 장난치는 풍습을 내팽개친 사람들이 많으니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마음이 넓어야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다." 정조에게 면신례는 태평성대의 이벤트였다. 윗사람이 좋아하면 아랫사람은 한 술 더 뜨는 법, 혹독한 폐단에도 면신례가 근절되지 않은 이유다.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신참 길들이기는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구성원의 적응과 정착을 돕는 것이 관건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조직에 들어온 신입의 조기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미만 공무원의 퇴직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도 신입사원의 이탈 때문에 고민이다. 어째서일까.

첫째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평생 직장 시대는 끝났다. 능력만 있으면 옮길 수 있으니, 불만과 부조리를 참을 필요가 없다. 둘째, 직업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때 월급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직장 문화는 필수다.

기존의 규범과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신입에게 '적응'을 요구하는 조직은 도태된다. 새로운 세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그들의 의지와 역량을 이끌어내는 조직이 살아남는다. 방법은 소통 뿐이다. '들어는 주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태도의 '답정너'식 대화로는 불가능하다. 청년의 이탈을 막으려면 조직의 규범과 관습을 원점에서부터 검토할 각오가 필요하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