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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성소수자들 많은데, 목사들만 모릅니다" 돌아온 '감리회 목사' 이동환

입력
2024.08.02 13:10
수정
2024.08.21 16:1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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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의 이슈메이커]
출교처분 중지 가처분 소송 이긴 이동환 목사
지난 3월 출교 뒤 5개월 만에 주일예배로 복귀
"우리 모두가 귀한 피조물, 성소수자도 마찬가지"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큐앤에이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환 목사. 법원의 출교처분 중지 결정에 따라 다시 로만칼라 옷을 입었다. 큐앤에이는 정직 처분 이후 만든 성소수자 운동 단체다. 임은재 인턴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큐앤에이 사무실에서 만난 이동환 목사. 법원의 출교처분 중지 결정에 따라 다시 로만칼라 옷을 입었다. 큐앤에이는 정직 처분 이후 만든 성소수자 운동 단체다. 임은재 인턴기자


지난달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동성 커플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동반자 관계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민법상 동성혼은 아직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에서 동성 동반자 관계를 사실혼과 굳이 구분해 차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취지였다. '차별 없이 그저 인정해 주는 것.' 성소수자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부분이다.

같은 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성소수자 관련 법원의 결정이 있었다. 퀴어 축제에 나가 성소수자들을 공개적으로 축복했다는 등의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출교처분을 당한 이동환(43) 목사가 재판절차정지 등 가처분 소송에서 이긴 것. 최종 결론까진 아직 멀었다지만, 이로써 지난 3월 확정된 감리회의 출교처분은 일단 정지됐다. 면직이 목사 자격만 뺏는 거라면 출교는 목사는 물론 교인 자격까지 박탈하는 최고 수위의 징계다.

이 목사는 "응원차 대법원에 갔다가 승소 판결에 모두 다 함께 기뻐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가처분에서 이겼다는 전화까지 받았다"며 웃었다. 오는 4일 일요일엔 그간 못했던 주일예배를 집도한다. 감리회 목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로만칼라 옷을 챙겨입은 이 목사를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출교 처분과 집중 공격에 죽음까지 생각했다"

-드디어 주일예배를 하게 됐다.

"그간 마음 한쪽이 허전했는데 다행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목사인 셈인데 그래도 힘이 되어주겠다고,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해주신 수원 영광제일교회 분들께 감사하다. 복직 뒤 첫 주일예배니까 떠들썩하게 축제처럼 해볼 생각이다. 어떤 말씀을 나눠야 할지 고민 중이다."

-가처분 결정이 눈에 띈다. 지난해 제기됐는데 반 년이 다 된 이제야 결론이 나왔고, 사회법이 교회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길 강조해뒀다.

"맞다. 법원 입장에서야 '굳이 종교 내부 문제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하면 그만인 사건이기도 하다. 감리회 측 주장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라 기뻤다. 교회가 아무리 쫓아낸다 해도 결국 우리는 되돌아갈 것이란 걸 명확히 보여준 결정이라 좋았다."

지난달 18일 대법원에서 동성 커플의 동반자 관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오자 소성욱(사진 가운데)씨와 김용민씨(사진 오른쪽)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대법원에서 동성 커플의 동반자 관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오자 소성욱(사진 가운데)씨와 김용민씨(사진 오른쪽)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너무 해쓱해졌다.

"그런가? 출교 사태를 겪으면서 이래저래 몸무게가 10㎏ 정도 빠졌다. 한때 극단적 생각도 했고,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괜찮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어떤 이해 말인가.

"내가 분명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내 존재와 목소리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무엇인지 실제로 체험하게 됐달까. 처음엔 투사가 된 듯 울끈불끈하기도 하고,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해서 다 망쳐버리면 어떻게 하나 부담이 엄청 컸었다. 지금은 나보다 이 과정 모두를 지켜보고 있을 교회 안팎의 성소수자분들이 더 걱정된다. 내 사건이 어떻게 될지, 그분들이 훨씬 더 예민하다. 최종 결론이 뭐가 됐건 저를 통해 교회도 성소수자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은 꼭 보여드리고 싶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성소수자들을 내치라고?"

-가족들 걱정이 컸겠다.

"다행히 부모님은 'TV에서 봤다'고만 하신다. 아내는 되레 등을 떠밀었다. '길게 봤을 때 역사 앞에 부끄럽게 남지 마라'고까지 하더라. 남의 속도 모르고. 하하하. 참 고맙다."

-안 보이던 귀걸이도 생겼다.

"나름대로 찾아낸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스트레스 풀기 위해 책을 읽거나 운동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신데, 난 일에 열중하는 것 외엔 별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다행히 예쁘다, 잘 어울린다 해주셔서 더 뚫어볼까 생각 중이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3년 우리 교회에서 한 분이 제게 커밍아웃을 하셨다. 평범한 분이었는데 어느 날 '사실 제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 하시더라. 성 정체성 문제 때문에 교회를 옮겨오신 것 같았는데 1년 정도 우리 교회를 다녀보니 제가 좀 편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굉장히 놀랐겠다.

"저 사람은 성소수자야 이러고 만난 게 아니라 교회에서 늘 보던 평범한 사람이 그런 얘길 하니까 막연하게 '동성애=죄악'이라고만 알고 있던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다음부터 공부했다. 성경에선 뭐라고 하지? 감리회에선? 다른 교회에선? 다른 나라에선? 교회 말고 의학계에선? 심리학계에선? 열심히 찾아봤다."


"교회 내 성소수자? 의외로 많다"

-성소수자는 교회에 안 가면 그만 아닌가. 요즘 세상에 교회엘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선 교회가 자신을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있다. 물론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 이런저런 문제로 상처를 받은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저 또한 '혐오나 일삼는 그런 교회 그만두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종교란, 신앙이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에겐 어떤 근원적인 것이어서 떠나기보다는 바꾸고 싶다."

-교회 내 성소수자들은 많은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목사님 자녀들이 많다. 참 희한하게도 그렇다. 상담 등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의외로 많다. 목사님들만 모를 뿐이다."

2018년 인천 동구 동인천역에서 처음 열린 인천퀴어축제 당시 현장 모습.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행사였지만 축제 반대 측 인사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인천 동구 동인천역에서 처음 열린 인천퀴어축제 당시 현장 모습.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행사였지만 축제 반대 측 인사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인천 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를 공개적으로 축복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대단한 기획이나 의도 같은 건 없었다. 2018년 처음 열렸는데 반대 측 목사가 현행범으로 체포될 정도로 폭력사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최 측에선 '찬성하는 목사도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했고 어쩌다 제게 연락이 닿았다. 그게 전부다."

-그래도 쉽지 않았을 텐데.

"주최 측에서 행사 소식을 알리니까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왔다. 단톡방도 난리가 났고. 이거 너 맞냐, 굳이 해야 하냐, 너를 찾아낼 거라고 하더라 같은. 큰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으니 그냥 했다. 행사 자체는 순조로웠다. 전해에 폭력사태가 있었으니 경찰도 경비를 잘 해줬고."


"그렇게 따르던 미국 교회도 타락했다는 한국"

-일종의 '괘씸죄' 아니었을까. 하더라도 조용히 하지 왜 그렇게 대놓고 요란하게 하느냐는.

"그런 측면도 있을 것 같다. 감리회에서 동성애 처벌 조항(교리와 장정 3조 8항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을 만든 게 2015년이었다. 그해 미국에서 가장 크다는 장로교회(PCUSA)가 성소수자를 인정했고, 미국 대법원도 동성혼 합헌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파송 선교사에서 시작했기에 한국 교회는 늘 미국 교회를 존중하고 따랐는데, 그때 이후 '미국 교회도 타락했다'는 한탄이 나오더니 처벌 조항이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3조 8항이 언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관심사이긴 했다."

2022년 12월 13일 마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성혼을 인정하는 '동성 결혼 존중 법안'에 서명한 뒤 관계자들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2년 12월 13일 마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성혼을 인정하는 '동성 결혼 존중 법안'에 서명한 뒤 관계자들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소위 말하는 '시범 케이스'인가.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제 사건 이전에 이미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돌긴 했다. 목사 자격을 주는 최종 면접 때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슬쩍 물어보더라 같은 이야기들.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제가 공개적으로 축복을 한 거다."

-감리회를 비롯, 교회가 가장 걱정하는 건 분열 아닐까 싶다. 미국 감리회도 성소수자 문제로 올해 공식적으로 교회가 갈라섰다.

"맞다. 성소수자 문제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30% 정도의 교회가 떨어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계 교회로 안다. 여러모로 마음 아픈 일이고, 한편으론 성소수자 문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 성경을 근거로 천동설, 노예제, 남녀차별 같은 걸 정당화하거나 그게 교리라 주장하는 이들은 없다. 성소수자 문제 또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거창한 인권의식 같은 건 내게도 없다"

-이 목사 출교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6명의 감리회 목사들이 퀴어 축제에 나가 공개 축복을 강행했다. 우리도 출교시켜보라는 항의인 셈이라 싸움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처분 결정이 더욱 고맙다. 우린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딱 때에 맞춘 것 같다. '이동환 목사도 돌아가는데 다른 사람들 출교시켜봐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신호를 확실히 줬다고 본다."

-교회는 교회 내부의 일이기에 법원을 따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럴 때엔 결국 또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축복하고 있는 이동환 목사. 연합뉴스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에게 꽃잎을 뿌리며 축복하고 있는 이동환 목사. 연합뉴스


-어쩌면 기약 없을 수 있는, 기나긴 싸움이다.

"결국 교리와 장정이 바뀌어야 한다. 교리와 장정은 말 그대로 교리 그리고 장정으로 이뤄졌는데 교리엔 성소수자 얘기가 없다. 장정에다 끼워넣은 것이다. 120년 한국 감리회 역사에 10년도 채 안 된 조항이다. 미국 감리회도 1970년대에 반동성애 조항을 넣었다가 50년 만에 없앴다. 우리도 없애면 된다."

-교회는 왜 성소수자를 끌어안아야 하는가.

"예수는 가장 외면받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벗이 됐다. 지금 예수가 살아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엄청난 인권의식, 정의감, 소명의식 같은 건 내게도 없다. 다만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온다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스스로 물어보면 답은 자연스레 나온다."


"모두가 소중한 피조물임을 잊지 말자"

이 목사는 요즘 '상처 주지 않는, 평등한, 안전한 교회 만들기' 실험 중이다. 성소수자를 위한 예식서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나이 많은 가부장적 남자 목사'가 주관한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각종 교회 예식을 좀 더 평등하게 바꿔보는 작업이다. 지난해 장례예식서를 만들었고 올해엔 연인 축복 예식서를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엔 '컬러풀 : 엣지 오브 워십'이란 행사도 처음 치렀다. 방방 뛰면서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그런 예배를, 보수적 대형교회가 아니라 성소수자 신도들도 한 번 해보자는 취지였다. "60명 정도 오셨는데 많이들 울고 가셨어요. 겉으론 씩씩하고 꿋꿋해도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우울감 같은 게 마음속 깊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원 없이 털고 가서 기쁘다는 분들도 계셨구요."

목사직에 복귀한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은재 인턴기자

목사직에 복귀한 이동환 목사.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은재 인턴기자

성경 창세기는 하나님이 자신을 본떠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무신론자들은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어서 그렇다고, 소의 신은 소를, 개미의 신은 개미의 형상을 닮았을 것이라 비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의 본뜻은 그게 아니다. 신이 스스로를 본떠 만들었을 정도로 인간은 존재 자체가 하나하나 모두 다 소중하다는 의미다. "맞아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받았는데 누가 누구에게 틀렸다고 할 수 있나요.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하나님의 창조가 틀렸다고 말할 건가요."

스스로도 성소수자 문제를 잘 알지도 못했고 그 문제에 뛰어들 생각도 없었다던 사람이 어쩌다 최전선의 투사가 됐을까. "저의 쓰임이 여기에 있다는 뜻인 것 같으니 그저 제가 이 쓰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길 기도할 뿐입니다." 종교적 대답이었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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