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기자협회 초청 토론 갔다 역효과
“해리스, 흑인인 척” 이간하려다 뭇매
해리스 “트럼프, 분열 조장·무례” 일침
올 11월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 후보 자리를 굳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그의 지지 기반인 흑인 사이를 벌리려고 적진에 들어갔다가 '인종주의' 비판을 자초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건졌다.
본전도 못 건진 이간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 참석해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해리스)는 줄곧 자신의 인도계 혈통만 홍보해 오다 몇 년 전 돌연 흑인으로 변신했다”며 “나는 모르겠다. 그녀는 인도계냐, 흑인이냐”고 반문했다. 대선 경쟁자가 정치적인 이유로 인종을 바꿨음을 암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추측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가짜 흑인’이라는 식의 ‘이간질 공세’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도(모친), 자메이카(부친) 이민자의 딸인 해리스는 워싱턴 소재 흑인 대학 하워드대에 다녔고 흑인 여학생 클럽 ‘알파 카파 알파’ 회원이었다”며 “2019년 ‘흑인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짚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의 발언은) 역겹고 모욕적”이라며 “타인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꼬집었다.
빈축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코네티컷주 흑인 민주당 하원의원 자하나 헤이스는 “명백히 인종주의적 감정이 실렸다”고 질책했고, 공화당 소속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인종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날 흑인 여대생 클럽 ‘시그마 감마 로’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연 행사에 참석한 해리스 부통령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분열을 조장하고 무례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인들은 더 나은 리더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링컨 이래 가장 흑인 편?
이날 토론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들고 온 핵심 메시지는 ‘불법 이민자가 흑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사퇴 뒤 첫 유세부터 해리스 부통령을 ‘국경 차르’(이민 정책 총괄자)로 부르며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이민 실정 책임을 그녀에게 묻겠다는 뜻을 천명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서는 맞춤형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토론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작부터 압박성 질문에 발끈하며 질문자와 설전을 벌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을 하고, 흑인 검사와 언론인을 모독하는가 하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집에 불러 저녁을 먹은 사람을 왜 흑인 유권자가 믿어야 하느냐’고 묻는 ABC뉴스 기자 레이철 스콧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끔찍한 질문”이라며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ABC까지 “끔찍한 가짜 뉴스 방송”이라고 비하했다.
청중 반응은 주로 야유였다. “내가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흑인을 위한 최고의 대통령이었다”는 자랑에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불법 외국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거나 임신 9개월 차에도 임신중지(낙태)가 허용된다는 착오, 2021년 1월 의회에 난입한 폭도들을 사면하겠다는 배짱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시간 예정이던 토론은 30여 분 만에 끝났다. CNN뉴스 앵커 애비 필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올해 가장 알찬 트럼프 인터뷰였다”고, MSNBC방송 출연 정치평론가 팀 밀러도 X에 “트럼프에게 의견 발표 기회를 주지 말라는 사람들이 왜 틀렸는지 보여 줬다”고 칭찬했다. 그의 밑천이 드러났다는 뜻이다. 반면 보수 성향 폭스뉴스 논평가 타이러스는 방송에서 “일부러 트럼프를 심술궂고 못되게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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