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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피는 물보다 진할까?

입력
2024.08.05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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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동아시아를 대변하는 가족주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에게는 나라도 '국가(國家)'라는 집(家)의 연장선일 뿐이다. 즉 유교의 혈통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주의적 표현인 셈이다.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개인의 수양을 통해 집안을 올바로 하고, 이것을 넓혀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다. 즉 '개인→집안→국가→천하'라는 나와 집안의 확대 개념에 국가와 세계 역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주(宇宙)도 '집 우(宇)+집 주(宙)'로 돼 있는 거대한 집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잘 모르는 분들을 지칭할 때도 ‘3촌’ 관계를 나타내는 “아저씨ㆍ아주머니”로 불렀던 것을 통해서도 판단할 수 있다.

촌수는 피의 농도를 의미한다. 1촌 간인 부모와 자식의 농도가 가장 짙고, 그다음이 형제 간인 2촌이다. 이는 오늘날 신장 이식 등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피의 농도가 짙으면, 이식 가능성도 높다.

유교에서는 가족주의의 확대를 '친친존존(親親尊尊)'이라고 했다. 친한 대상을 친하고 존중할 대상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친친은 가족의 혈연을 의미하며, 존존은 군신과 같은 직급의 상하를 나타낸다. 바꿔 말하면, '효'와 '충'을 뜻하는데, 이 중 '친친'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의 한자적 측면이다.

그런데 유교가 붕괴하고 도시화되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 친척보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다. 피의 농도를 넘어서는 친밀감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자식에게 문제가 생기면, 친구가 가장 먼저 알고 부모와 가족이 제일 늦게 아는 게 현대사회 아닌가!

친밀감이 혈연을 압도하면서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가 반려동물에 관한 판단이다. 우스갯소리로 '부모님은 편찮으시면 요양원으로 보내지만, 반려동물은 최후까지 함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가 아닌가!

우리나라 반려동물 인구는 600만 가구에 1,400만 명이나 된다. 또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 그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친밀감도 강하고, 반대로 상실감도 크게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재정리가 요청되는 요즘이다.

불교는 윤회론을 바탕으로 생명 평등을 강조하며, 동물을 수단화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생명 존중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 비정(批正)에 있어 필요한 의미가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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