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이틀 만에 직무가 정지됐다. 이동관, 김홍일 전 위원장이 탄핵 추진 직전 사퇴한 것과 달리 이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최종 판단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5인의 방통위원 중 김태규 부위원장 1인만 남게 된 방통위는 장기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대통령실 행보를 보면 이사진 교체를 통한 공영방송 장악 외에 방통위 본연의 역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위원장이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건 취임 당일 전광석화처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진 교체라는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합의제 기구 성격상 1인 체제에서는 아무것도 의결하지 못하는 개점 휴업이 불가피하지만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데는 막무가내 식 탄핵 카드만 쏟아낸 야당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이상인 전 직무대행까지 무려 4명의 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여놓고도 그토록 막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봤다. 명분쌓기용 탄핵으로 방통위 기능만 마비시킨 셈 아닌가.
지금 방통위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구글∙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과징금 처분, 데이터 주권 보호책 마련,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 망사용료 문제 등 국민 일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헌재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수개월간 ‘식물 방통위’로 방치하는 건 대통령실도 정치권도 무책임의 극치일 것이다.
정쟁을 벌이더라도 정부기구 기능까지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방통위설치법은 5명의 상임위원 중 2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명은 국회(여당 1명, 야당 2명) 추천으로 임명하도록 한다. 민주당은 '3대 2'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지만 그들이 여당일 때도 그랬음을 인정해야 하고, 대통령실은 앞서 야당 추천 위원 임명을 거부해 화를 초래한 것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정치권은 국회 몫 3명을 조속히 추천하고 대통령은 즉각 임명하기 바란다. 야당이 추진하는 방통위법 개정 등의 논의는 일단 정상화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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