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입추를 하루 앞둔 지난 6일 기준 서울에선 16일째 열대야가 지속됐다. 밤에도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열대야의 서울 기록은 2018년 26일이 최장이다. 지금 같은 폭염이 지속될 경우 다음 주면 이 기록을 갈아 치울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강릉에선 최저기온이 30.7도인 '초열대야'까지 나타났다. 폭염 강도가 높아지는 추이를 감안하면 서울에서도 초열대야를 경험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지난 5일까지 온열질환자는 1,810명, 이 중 사망자는 17명이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전국 집계가 시작된 지난 6월 11일 이후 폐사한 가축은 35만4,000마리, 폐사한 양식 어류도 2만3,000마리에 달한다. 폭염에 따른 농작물 피해로 과채류 가격이 들썩이면서 먹거리 물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 정부는 2018년 9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폭염을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는 '자연 재난'으로 규정했다.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앞에 크게 펼쳐지지 않을 뿐, 폭염은 소리 없이 인명을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로서 여름철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폭염 피해는 주로 근로·거주 환경이 열악한 사회적 약자에게 나타난다. 여름을 나기 위한 필수품이 된 에어컨은커녕 더운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는 쪽방촌 거주자와 거동이 어려운 독거노인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다. 폭염 속 야외에서 일하는 농업·건설업·배달업 종사자도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 이쯤 되면 폭염은 단순한 이상 기후 현상이 아니다. 폭염으로 부각되는 불평등과 격차 문제까지 아우르는 사회적 재난이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에너지 빈곤층에 전력 및 쉼터 제공, 정보전달 및 응급서비스 제공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야외 근로자 보호를 위해 현재 권고사항인 폭염 시 작업 중지나 유연 근무를 법제화하는 등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정쟁 중인 여야도 모처럼 취약계층 전기요금 감면에 공감대를 밝혔으니 입법 논의를 서두를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