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극·장]
화성 백미리 어촌계 성공 신화 이끌어
마음의 문 열고 대하자 젊은 귀어인 몰려와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인구 소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짙어졌어요. 누구라도 나서야 했죠.”
화성 백미리 어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호연(60)씨는 2004년 40대 젊은 나이에 마을 어촌계장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평균 나이 75세의 어촌계에서 막내뻘인 그에게는 어촌계장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적극적 지지가 힘이 됐다.
김 계장은 “1990년대 중후반 인근 바다에 시화방조제와 화옹방조제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김 양식과 갯벌 채취가 막히게 되자 젊은 어민들이 하나둘 타지로 떠났다”며 “남은 어민들은 김 양식장 운영 경험이 있는 저에게 고향을 지켜달라며 힘을 실어 줬다”고 말했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김 계장이 주도해 시작한 새꼬막, 바지락 양식이 연이어 성공하고 수산물 유통, 가공 등 마을 공동체 사업들이 속속 안정을 찾으며 20년 전 가난을 면치 못하던 백미리는 어느덧 부유한 어촌으로 떠올랐다. 김 계장의 전략과 추진력, 토박이 어민들의 지지와 협조, 귀어인의 땀과 노력 삼박자가 맞아 일궈낸 대반전이었다.
그는 백미리가 ‘부자 어촌’, ‘귀어인의 성지’로 거듭난 건 ‘주민통합’이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계장은 “원주민들이 귀어인들을 '외부인'으로 보는 편견을 깨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인식 전환에 힘썼다"며 “그러자 귀어인들도 서서히 마을 공동사업에 참여하며 마을 발전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예비 귀어인들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최소한 1년은 수입이 적더라도 닥치는 대로 배우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며 “어촌의 낭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미리를 단순히 부자 어촌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더 큰 희망도 밝혔다. 청년 어업인을 더 많이 받아들여 곁에서 그들의 성공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마을 공동사업의 매출을 끌어올려 어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소득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올해부터 80세 이상 원로 어촌계원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백미리를 청년이 와서 살고 싶은 어촌, 일한 만큼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어촌으로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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