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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의 명쾌한 설득력

입력
2024.08.10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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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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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와 여자경 지휘자가 지난 7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일보 창간 70주년 기념 콘서트 음악회 ‘70 Years of Harmony’에서 협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와 여자경 지휘자가 지난 7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일보 창간 70주년 기념 콘서트 음악회 ‘70 Years of Harmony’에서 협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휘자는 고독하다. 보통의 음악가들은 자신이 내는 소리를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지휘자는 악기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지휘봉은 아무리 휘둘러도 바람 소리만 날뿐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를 대면하는 리허설에 돌입하자마자 지휘자의 악기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변모한다. 허공에 지휘봉을 흔들면 100여 명의 단원으로부터 집단적인 소리를 이끌며 강력한 사운드를 뿜어낸다. 그러므로 지휘자는 자신이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 고충을 지니면서도 대형 음향집단인 오케스트라를 쥐락펴락 통제하는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머릿속 음향 실험실에서 상상의 청력으로 가동시켰던 악상을 포디움에 올라 실제로 구현시킬 때, 지휘자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강렬한 체험을 만끽한다.

지휘자는 모든 단원을 동시다발적으로 주시하고, 모든 단원의 주목을 받는다. 이때 지휘자의 리더십은 자유로운 영감과 단합의 결속력이란 이해 상충을 극복하는 데서 시작한다. 개성이 제각각인 단원들을 자발적이고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기 파트인 한 단짜리 악보만 식별하면 되지만, 지휘자는 수십 단으로 이뤄진 총보를 완벽하게 인지해 누가 주인공이고 엑스트라인지를 구별한다. 모든 악기가 내가 주인공이라고 나서서 외치면 일대 혼란이 일어날 뿐이다. 지휘자는 음악의 조립공과 같아서 총보에 새겨진 음향 덩어리를 세밀히 해체하고 다시 거대한 전체로 조합한다. 이러한 구조적 질서를 구현하려면 단원들에게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연 전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직접 대면해 연습할 수 있는 리허설은 대개 3, 4회 정도다. 한정된 리허설 동안 교향곡과 협주곡이 복잡하게 편성된 프로그램에 연주시간도 1시간 30분에 달하는 공연을 완성하려면 지휘자 스스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연륜이 오래된 단원들은 그 곡을 지휘자보다 더 많이 공연해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수록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에 확신을 갖고 단원들과 교감에 공들이는 탄탄한 맷집과 명쾌한 설득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제왕적 리더십을 구사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장악한다면, 누군가는 단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자발적 에너지와 창의적 악상을 이끌어 낸다. 음표뿐만 아니라 쉼표의 잔향까지도 공들여서 귀 기울이는 지휘자의 리더십은 침묵 뒤편의 속마음까지 헤아리게 한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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