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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중산층’은 대체 누구인가?

입력
2024.08.12 18:00
수정
2024.08.12 18:06
22면
0 0
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윤 대통령•한 대표의 ‘중산층 위한 세제’
상속재산 17억+금융자산 5억 부자 혜택
현실과 괴리 ‘중산층’ 인식에 민심 냉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신임 인사차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한 한동훈(왼쪽) 국민의힘 대표와 만찬 회동을 앞두고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신임 인사차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한 한동훈(왼쪽) 국민의힘 대표와 만찬 회동을 앞두고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단두대에 잘린 자신의 목을 든 섬뜩한 이미지로 재현된 프랑스혁명기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짜뉴스’로 사후에도 오랫동안 시달렸다. 혁명 전야, 백성들이 빵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는 보고에 “빵이 없으면 케이크(브리오슈)를 먹게 하라”는 한심한 답을 했다는 얘기다. 왕비가 그런 멍청한 얘기를 진짜 했을 정도로 무지하거나 비정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솔깃했던 건, 늘 호사스러운 식사만 해왔을 왕비였기에, 기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사람이 속칭 ‘노는 물’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인식까지 ‘노는 물’에 갇혀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세제개편과 관련해 연일 중산층을 입에 올리는 걸 보면, 두 ‘지도자’가 과연 사적인 ‘노는 물’을 넘어 중산층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최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및 상속세 완화 방안과 관련해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고, 중산층 가정에 부담을 덜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전 각종 종부세 감면 조치와 관련해 “종부세 대상 중 거의 대부분이 그냥 중산층”이라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금투세 폐지는 민생”이라거나, “개미투자자들의 손해”라는 식으로 ‘민생’과 ‘개미투자자’ 같은 용어를 활용해 세제개편이 중산층을 위한 것임을 애써 주장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정부ㆍ여당이 추진했거나 추진하려는 종부세와 상속세, 금투세 개편이 중산층을 위한 것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가 생각하는 중산층이 누굴 말하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인지 납득은커녕 ‘정치에 이용만 당하는 중산층’으로서 되레 화가 치밀 정도다.

지난 정부 종부세는 지나치게 과격했고, 지난 25년 동안 거의 고쳐지지 않은 개인 상속세제 역시 자산 인플레이션 등을 감안해 합리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조정 필요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빌미로 중산층을 내세우면서, 실제론 돈 많고 힘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세제개편이 강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이라 할 만한 소득 4분위(상위 20~40%) 집단의 순자산 평균은 6억1,553만 원이다. 지난해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국민 설문조사 결과로 쳐도 순자산 9억4,000만 원 정도가 중산층 자의식 기준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개인 상속세 개편안대로라면 4인 가구 기준 상속재산 17억 원까지 상속세가 면제된다.

상속재산 17억 원만 따져도 순자산 기준 상위 5% 가구 평균보다도 많다. 그러니 중산층이 아닌 부자들이 혜택을 보는 세제개편이라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금투세는 금융투자로 연간 5,000만 원이 넘는 소득에 대해 20~25%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주식에서 연간 5,000만 원을 벌려면 수익률 10%를 쳐도 5억 원을 투자자금으로 굴릴 정도의 여력을 갖춘 주체이니, 금투세 폐지 역시 중산층 대상 정책은 결코 아닌 셈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은연중 ‘낙수효과’를 제기한다. “부자감세가 아니라 결국 서민이 혜택을 보게 된다”거나, “큰손들이 증시를 이탈하면 1,400만 개미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는 식이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그걸 무리한 ‘부자감세’를 포장하기 위한 궤변으로 여기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는 물’을 넘어 중산층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실제 세제개편에선 반드시 합리적 균형을 찾기 바란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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