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금융업권에 2년 남짓 출입하면서 '예지력' 같은 게 생겼다. 가령 A은행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인상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고 치자. 금융생활과 직결된 정보지만 정보량이 극히 적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보고한다. "두세 군데 더 모아서 쓰겠습니다." 촉은 틀리지 않는다. 빠르면 당일, 늦어도 일주일 내 B, C, D, E 은행 중 두 군데는 더 금리를 올릴 테니까. 사실 예지력보다는 '경험칙'이 적확한 표현일 거다. 이들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경험으로부터 깨달은 법칙.
지난달에도 그랬다. 3일 KB국민은행의 0.13%포인트 금리 인상 발표 이후, 하나은행이 "우리는 이미 1일부터 금리 감면폭을 0.02%포인트 줄였다"고 했고, 일주일 뒤 신한은행이 "15일부터 0.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그런 식으로 14일까지 신한·우리은행 5회, KB국민은행 4회, NH농협은행 2회, 하나은행 1회 금리 조정을 발표했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빠질 수 없다. 케이뱅크 4회, 카카오뱅크가 2회 금리를 올렸다. 신한과 우리의 주담대 5년물 금리 인상폭은 각각 0.95%포인트, 1%포인트에 달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금리 인상에도 '가계대출 관리'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6월(6조2,000억 원 증가) 대비 줄긴 했지만, 7월에도 은행 주담대는 전월 대비 5조6,000억 원 늘었다. 실패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 번째, 고객이 실제 적용받는 금리는 은행의 금리 조정폭만큼 오르지 않았다. 은행들이 올리는 건 가산금리인데,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시장금리가 그보다 더 가파르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와 가산금리를 더해 정한다.
두 번째는 '부동산 불패'에 대한 꺾이지 않는 믿음에서 찾을 수 있다. 1%포인트면 금리 앞자리가 바뀌는 수준인데, 대출이 꺼려지지 않을까. 최근 주담대를 받은 30대 후반 동년배에게 물어봤다. "부담되지만 버틸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광진구에서 송파구로 이사를 준비 중인 K의 말이다. "우리 집보다 상급지로 생각하는 잠실이 집값 오르는 폭이 커서 자산을 더 늘리고 싶다. 40년 만기로 하면 원리금이 월 400만 원인데, 배우자랑 소득을 합치면 먹고살 수는 있겠구나 싶어서 살짝 부담스러워도 옮기려 한다."
동향인 P의 말이다. "내 고향 남쪽바다에서 '벼락거지'가 된다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우리 집값은 내렸는데, 같은 기간 친구들 서울 집은 2배가 뛰더라. '북진(北進)'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산 증식이 가장 크다. 아이 교육은 둘째 문제다. 아직 전고점을 회복 못한 서울 집들이 있지 않나. 지금 집을 사면 그만큼 할인된 가격에 서울로 입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인은 서울로, 서울 사람은 '강남 3구'로 집중되는 현상. 은행 금리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들의 말에서 가계대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알고는 있지만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문제라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일까. 요즘 국회에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유행이라던데. '수도권 쏠림, 지역 소멸'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필리버스터해 줄 용자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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