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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일본 콤플렉스'

입력
2024.08.2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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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찬대(왼쪽에서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찬대(왼쪽에서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지시로 '독도 지우기 진상조사단'을 띄웠다. 지하철 역사 몇 곳과 전쟁기념관에 설치돼 있던 독도 조형물이 철거됐는데 그 배후에 윤석열 정부가 있고 이는 독도를 일본에 넘기기 위한 준비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이다. 당장 대통령실은 이를 괴담으로 규정했다. "우리 영토 독도에 대해 거대 야당이 영유권을 의심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펄쩍 뛰었다.

민주당은 이처럼 일본에 대해 극도로 강경한 외교 노선을 취해왔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때도 그랬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다른 잣대를 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에 한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왜 중국에 집적거리느냐"며 "셰셰"를 외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외교전에 나서선 안 된다"고 정부에 훈수를 뒀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는 온건한 실리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일본에만 유독 강경한 것이다. 반일 감정을 자극해 이득을 보려는 정치적 수라는 분석도 있지만 세계관의 차이라는 시각도 있다. 1980년대 체화한 중·러에 대한 낭만과 반일 의식이 국제 질서 재편 이후에도 업데이트되지 못한 결과란 해석이다.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일본에 산뜻하지 못한 건 여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에서 해방된 날을 기리는 이번 광복절 축사에서 대일 관계를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을 향한 통일 비전을 장황하게 언급했다. 일본 언론마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한일 관계를 지적하지 않았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공감은 잘 안 된다. 반일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일제의 과오와 양국의 미래 비전을 담담히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주기를 맞은 대통령실의 반응도 이상하다. 대통령실은 대뜸 야당에 날을 세웠다. "야당이 후쿠시마 괴담을 방류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며 "핵폐기물, 제2의 태평양전쟁 같은 야당의 황당한 괴담 선동이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6,000억 원이 이 과정에서 투입됐다"고 했다. 아무리 민주당의 대처가 마음에 안 들어도 방류 사태의 근본 원인 제공자인 일본 정부를 제쳐두고 야당에 먼저 책임을 추궁하는 건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결과론적 비판일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작년에는 오염수에서 뭐가 검출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편성한 것 아닌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한일 관계 회복이 급하다고 해도 일본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라는 비판이 여당 내에서도 나온다. 선진국으로 동경하던 일본에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야 모두 일본에 냉정하지 못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 문제에 양극단을 오가는 정치권보다 일반 국민들의 접근 방식이 훨씬 성숙해 보인다. 열린 마음으로 일본 여행과 문화 교류는 즐기면서도 과거사 왜곡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에는 합리적인 경계를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한일 관계에 대한 진정한 자신감 아닐까 싶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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