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등학교 야구대회 결과에 한국이 떠들썩했다.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3일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최정상에 섰기 때문인데, 1915년 시작된 여름 고시엔에서 외국계 학교의 우승은 처음이다.
여름 고시엔의 일본 내 위상을 봤을 때 한국계 학교의 우승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관심 받을 만하다. 일본 전역 3,700여 고교 야구부 중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별 예선을 거쳐 49개교만 출전한다. 본선 경기는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데 시청률이 20~30%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입장권도 전 경기 매진에 높은 가격의 암표까지 거래된다. 본선 진출만 해도 영광이라 할 정도로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경기 후 선수들은 고시엔 경기장 검은색 흙 한 줌을 담아 평생 기억으로 간직한다.
교토국제고 우승에는 감동의 서사도 담겨있다. 폐교 위기를 딛고 일어선 그들은 '미니 야구장'에서 찢어진 야구공에 테이프를 감아 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며 기적을 일궈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승리팀 자격으로 목청껏 불렀고, 이는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재일동포의 슬픈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졌다.
이 때문에 국내 언론은 우승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관련 기사를 앞다퉈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교토국제고 응원 메시지를 올렸고,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A4 4쪽 분량의 '참고 자료'까지 냈다. 정부 측은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국내 초청도 추진 중이다.
고시엔과 같은 시기, 서울에서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52회째인 이 대회는 '한국의 고시엔'으로 불린다. 여름 고시엔처럼 뜨거운 한여름에 열려 붙여진 이름인데 최근 경기장 분위기는 고시엔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 고시엔은 4만여 석의 입장권이 매진되는 반면 한국 고시엔은 하루 평균 관중이 100여 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선수 가족들과 학교 관계자,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비단 봉황대기만의 상황은 아니다. 대부분의 국내 고교야구 대회는 결승전을 제외하면 관중 200명을 채우기도 버겁다. 방송 시청률은 고작 0.2% 수준이다. 한국 야구의 미래들은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다.
우리 고교 야구도 일본의 고시엔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0~1980년대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스포츠는 유일한 해방구였고, 타지에서 동문들이 모여 모교를 응원할 수 있는 고교야구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환희를 선사했다. 하지만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우리 고교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구장이 철거된 이후 냉방시설도 없는 서울 외곽의 사회인 구장 등을 전전하며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한낮 더위를 피해 야간 경기를 하려고 해도 구장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늦은 시간까지 조명을 켤 수가 없다.
온 나라가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에 열광하는 사이 우리의 고교 야구는 더욱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28일부터 올해 마지막 전국대회인 봉황대기 8강전이 시작된다. 봉황대기도 그동안 고시엔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각본 없는 감동과 이변의 드라마를 연출해 왔다. 고교 야구 경기장이 다시 한번 팬들의 함성과 환호로 뒤덮이기를 기대한다. 우리 선수들이 뜨거운 여름 그 빛나는 순간을 평생 기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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