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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 엔지니어

입력
2024.08.29 00:00
수정
2024.08.30 10: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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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의 불평등과 사회정책' 학술대회에서는 70편 가까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온라인을 통하긴 했지만 아이버슨(Torben Iversen) 등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연구자들의 발표도 있었다.

다양한 발표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공유된 성장에서 비공유된 성장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워크숍이었다. 이 발표에서 나의 눈을 번쩍 띄게 한 것은 한국 성장체제를 '엔지니어 주도 공정혁신'으로 규정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성격 규정은 연구개발이 한국 기업의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다. 공정혁신보다 연구개발이 경쟁력에서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를 예로 들어보자. 자동차 품질의 80%를 결정하는 것은 연구개발과정이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연구 인력은 1995년 1,100명 안팎에서 현재 약 1만4,000명으로 늘었다. 매년 수조원 단위의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개발 조직이 성장한 만큼 공정혁신 담당 조직인 생산기술본부의 위상은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뿐 아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방문 조사한 중소기업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경기도에 위치한 이 회사의 종업원 수는 142명이다. 굴착기에 장착하는 유압브레이커 및 유압드릴, 크레인을 생산한다. 이 업체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중가 시장으로 진입해 들어가 경쟁력을 획득했다. 유럽, 중동, 미국, 중국에 지사 또는 법인을 두고 있다. 몇 년 전 이 시장에 중국 제품들이 물밀듯이 진입하였다. 중국은 라인생산을 통해서 연 3만 대를 생산한다.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제품 성능을 향상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든 상황이 도래했다.

유압브레이커 제품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내구성, 파쇄력, 저소음인데, 중요한 것은 내구성이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소재와 열처리 기술이 중요하다.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의 기술연구소와 협력하여 진동을 더 잘 흡수하는,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개발했다. 열처리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박사를 고용했다.

설계인력은 11명이다. 설계공정도 디테일하게 구분되어 있다. 설계 엔지니어의 능력 향상을 위한 과정도 체계적이다. 연구원들은 소재, 절단, 연삭, 가공, 열처리, 선삭, 조직검사를 모두 능숙하게 알아야 한다. 이처럼 세계시장에 진출해 있고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에서 제품경쟁을 좌우하는 것은 연구개발력이다.

우리나라 제조현장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이나 일본 기업들보다 공정혁신이 뒤떨어진다. 연공급 때문에 노동자들은 숙련형성에 별 관심이 없다.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예외 없이 고임금이지만 작업자들의 직무 범위는 좁고 문제해결 능력은 떨어진다. 효율적인 연구개발조직에 필수적인 연구개발과 제조현장 사이의 협력과 상호작용 수준은 낮다.

제조현장의 생산성 수준이 떨어지는 만큼 그 부담은 종종 엔지니어에게 전가되고 있다. 어떤 대기업의 연구개발 엔지니어는 딜러의 온갖 주문을 들어주면서 힘들게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지식경제화 정도가 증가함에 따라 연구개발 엔지니어의 공급, 연구개발의 조직능력이 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엔지니어는 더 큰 사회적 존중을 받아야 한다. 엔지니어 만세!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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