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에 따른, 언제나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편리함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오래전 낯선 타향에서 해 질 녘의 먼 산을 바라보며 고향 식구들을 그려 본 사람이라면, 또 백열등 아래에서 닿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밤새 손 편지를 써 본 사람이라면, 사람과의 아련한 거리가 얼마나 절절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지, 또 그런 그리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것이다. 지금은 그런 그리움은커녕 너무 잦은 전화 연락이 되레 성가실 정도가 돼버렸다.
▦ 사람들이 좋든 싫든 상대로부터 오는 연락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건 아마 1990년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의 등장부터였을 것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그 이래 지금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회사 연락(전화)’이 적잖은 스트레스였을 법하다. 퇴근 후엔 업무전화를 삼가는 게 당연한 매너일 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 측 연락은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 요즘 직장인들에게 퇴근 후 회사 등의 업무연락에 대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하는 법제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부터 호주가 관련 법 시행에 들어갔고, 앞서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 유사 법제를 시행 중인 나라만도 20개국에 달한다. 호주 법제는 회사 측의 연락 자체를 금지하진 않았으나, 직원은 업무시간 외 그런 연락에 부응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 게 골자다. 부당하게 연락불응을 추궁하거나 처벌하는 회사는 최대 8,45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의원 발의로 근무시간 외 통신수단을 이용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출됐는데, 향후 ‘금지’보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절충이 예상된다. 정작 '연락 금지' 수준의 법제화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우선 전화 스토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수신 차단 기능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신고된 발신자의 연락 금지를 법제화한다면, 공연한 연락에 대한 상대의 불응에 감정이 격화해 벌어지는 극단적 사고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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