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 2년 임기 평가]
검사정권의 내재적 한계로 권한 제한
원칙 강조했지만 김건희·이재명 논란
'공정성 의식하다 스텝 꼬였다' 지적도
이원석 검찰총장의 임기 2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얼음판이었다.
이 총장은 자신(사법연수원 27기)보다 4년 선배(23기)인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검찰 수장에 취임했다. 가장 검찰을 잘 알고 검찰을 꽉 잡고 있는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후배 총장'의 행보는 조직 안팎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과 검찰의 인연만으로 야당에서 '검사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이 총장은 △제1야당 대표에 대한 다수의 비리 의혹 △대통령 배우자가 연루된 형사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15일 임기를 마치는 이 총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짙은 그늘 아래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지키며 성실히 총장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총장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다만 공을 인정하는 쪽도 '이원석호 검찰'에 숱한 유무형의 외풍이 존재했을 거라는 점을 쉽게 부인하진 못한다.
성실한 원칙론자 이원석
이 총장을 접한 이들은 그가 성실한 '원칙론자'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취임 초기 세세한 실무까지 직접 챙기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가 생니 2개를 뺄 정도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절차적 정의와 같은 공정성이 문제가 될 때마다 원칙에 입각해 처리하고자 애썼다. 이태원 참사 수사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던 수사팀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방침을 바꾸자 그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를 거쳐 기소를 이끌어 냈다.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에 대해 '출장조사'가 이뤄져 논란이 일자, 수심위 직권 회부로 논란을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내부에선 원칙에만 집착하는 이 총장 업무 스타일에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융통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어떻게 수사해도 한쪽 진영은 불만일 것이기에 이 총장이 매우 신중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총장이 하나하나 간섭을 해야 해서 내부에선 인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원한 면은 없어도 2년간 큰 악수는 없었고, 중립을 위한 노력과 고민을 했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평가했다.
여야 차별 논란 빚은 검찰수사
이 총장이 '공정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건 검찰의 정치권 수사가 대부분 야권을 노리는 쪽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편파수사 논란을 불식하기 위한 수사(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증교사,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대북송금 등 사건으로 잇달아 재판에 넘겼고,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 대한 허위 보도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에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이라는 이름의 수사팀을 꾸려 언론인 등을 수사선상에 올렸지만, 결국은 이 대표 대선 캠프를 노리는 수사로 해석된다.
전 정부 관련 수사도 넘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 특혜 채용 의혹,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이다. 김 여사 일가 비리 의혹 사건 일부가 기소된 점을 제외하면 여권에 대한 수사는 많지 않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권 초여서 여권 관련 제보가 없었을 수 있고, 전 정부 때부터 고발 등으로 누적된 야권 수사를 안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면서도 "그럴수록 여권 수사에서 중심 잡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수의 검사와 법조인은 이 총장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 엄정 수사를 올해 5월에서야 지시한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총장 수사지휘권 복원 요청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사정이 있었겠지만 김 여사 연루 사건을 회피하는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공정성 논란을 의식하는 바람에 '수사기관이 너무 정치적 고려를 한다는 또 다른 논란을 자초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명품가방 사건에서 '전담수사팀 구성 지시→소환조사 원칙 강조→서울중앙지검 출장조사 질책→수사팀 신임→ 수심위 회부' 과정에서 스텝이 꼬였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할 것이라는 여론의 심증은 굳어가는 상황에서 임기 말 총장이 '엄정 수사'를 강조하는 부조화가 이어졌고, 여론은 총장의 말을 믿지 못하고 '명분쌓기'로만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수사로 말하면 되는데, 수심위에 책임을 떠넘긴 것 아니냐"(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공여자' 최재영 목사 사건에 대한 수심위 소집이 결정되면서 임기 내 사건 처리 목표도 물 건너갔다.
인사 패싱 논란까지... 엇갈린 평가
이 총장이 이번 정부에서 여러 차례 중요 의사결정에서 배제(패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총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2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체제에서 대검 차장검사로 임명돼 총장 직무를 대행했다. 법무부는 한 달 뒤인 6월 대검검사급(검사장 이상) 인사를 단행했다. 총장 임명 후 논의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때까지도 직무대행 체제가 유지됐다. 이 총장은 9월에서야 총장에 임명됐다. 마땅한 총장감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이 총장을 자리에 앉혔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 5월 박성재 법무부 장관 시절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에선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대검 참모진이 대거 교체됐는데, 이 역시 이 총장 지방 출장 중 기습적으로 이뤄져 '총장 패싱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 총장은 이후 출근길 문답에서 '7초간 침묵'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인사에 대한 총장의 의견 제출 권한이 보장돼야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데, 이번 정부에선 철저히 부정됐다"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자신의 의견이 묵살됐다면 과감히 총장 자리를 던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장부터 입을 닫으면 말단 검사가 권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패싱 인사가 '총장에서 물러나라'는 신호일 수도 있는 만큼, 그 뜻에 따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해석도 있다. 실제 이 총장은 주변에 '총장 자리가 그렇게 쉽게 던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12월 총장 임기제(2년) 도입 후 임기를 끝까지 지킨 총장은 이 총장을 포함해 24명 중 9명뿐이라, 임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취지다.
심우정 총장은 어떨까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야권 및 전 정권 수사 등은 결국 이 총장 임기 내 처리되지 않아 차기 총장에게 공이 넘어갔다. 원칙을 앞세우는 이 총장에 비해 융통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심우정 차기 총장에 대해,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좋게 말하면 중심을 잘 잡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건 '기획통'인 그가 거쳐온 자리들이 결단을 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 "정권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검찰 조직을 이끌 때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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