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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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산산'이 몰아치는 8월의 마지막 금요일, 도쿄 나가타초에 위치한 총리 관저(간테이: 官邸)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났다. 제32회 한일 포럼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과 일본 관계자들의 예방을 받는 자리였다. 특유의 빠른 걸음으로 행사장에 들어온 기시다 총리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지만, 참석자들에게 미소를 띠며 인사말을 이어갔다.
지난해 봄 이른바 '셔틀 외교'가 복원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제까지 11번을 만났다. 셔틀 외교 복원 직후 있었던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중에는 '워싱턴 선언'이 발표되었고, 5월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대되면서 한·일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했다. 8월에는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려, 세 가지 문서가 채택됐다. 윤-기시다 간 가장 최근 만남은 올해 7월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인도·태평양 4개국 파트너(IP4: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정상 자격으로 초청되면서 가진 양자회담이었다. 이번 주 방한이 예정대로 성사되면 두 정상은 임기 중 무려 12번을 만나게 된다.
한일 포럼 참석자들과 만남에서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성과 중 한일 관계 개선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과는 11번이나 만나면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자평했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미국과의 양자 관계를 중심으로 짜인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구조에서 한일 관계는 약한 고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양 정상들의 의지로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면서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이른바 격자형(Lattice-like)으로 안보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가 강화되지 않고서는 어려웠을 일이다.
일련의 흐름에서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경색될수록 일선에서 가장 고통받는 재일동포들, 문화적 친밀감이 높고 교류를 확대하고 싶어 하는 양국 젊은이들, 한일 간 갈등 국면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위협 세력들을 생각할 때, 한일 관계의 개선은 필요했었다. 양국 정상의 의지로 분위기가 일거에 바뀌게 된 것은 동아시아 국제관계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포스트 기시다 시대다. 양국 국민 감정은 확실히 호전되었지만,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게다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라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대외 정책도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이달 27일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다수 후보들이 거론되며, 역대급 혼전 양상을 보인다. 정치 자금 스캔들 문제로 주요 파벌들이 힘을 잃은 상황이어서, 자민당은 국민들에게 쇄신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유력 후보로 여겨지는 정치인들이 한일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목소리가 높다. 정치 자금 문제, 인플레이션, 미국 대선 이후 대외 정책 변화 가능성 등 일본 정치권이 당면한 현안들을 생각할 때 한일 관계가 최우선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누가 간테이에 입성하더라도 양국 관계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건설적 관계로 발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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