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수 비슷해도 전공의 빠져 인력 급감
박민수 차관 "지역·의료기관별 어려움 인정"
응급실 불 못 끄면 의료개혁 차질 판단한 듯
지난달 말 '1차 실행방안'을 발표하고 의료개혁에 돌입한 정부가 '응급실 위기'를 일부 인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정 브리핑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다"고 언급한 지 4일 만에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다"며 입장을 전환한 것이다. 응급실 공백이 확대되면 이달부터 시동을 거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 등 의료개혁의 첫걸음이 꼬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곳곳 아우성에 정부 "의료 현장 어려움 인정"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응급실 운영 파행에 대해 "전국 총계와 달리 세밀하게 들어가면 지역·기관별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며 "전체 응급실 409개 중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23개는 담당자를 지정해 매일 모니터링하고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는 등 엄중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 응급실 대다수가 24시간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일부 병원에서 응급실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응급실 운영 축소는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자체 파악 결과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이 응급실 운영 중단 등을 검토 중이다. 앞서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건국대 충주병원 등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미 주말이나 야간의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집계한 응급실 근무 의사 수도 응급의료의 위기를 방증한다. 지난해 12월 1,504명이었던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180곳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달 26일 1,587명으로 5.5% 늘었지만 문제는 총 인원이다. 복지부는 이날 전문의와 일반의, 전공의를 포함한 전체 응급실 근무 의사 수가 평시 대비 73.4% 수준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29일 의료 현장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윤 대통령 국정 브리핑 직후 대한의사협회와 전국 의대 교수 등은 "현실과 괴리된 인식"이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조차 응급의료 상황에 대해 "국민 여론과 민심을 다양하게 들었고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의료 개혁 아킬레스건 응급실 위기 진화 '총력전'
정부는 큰 틀에서는 "응급의료 붕괴 우려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날도 통계를 들어 2일 정오 전국 응급실 409곳 중 99%인 406곳은 정상 운영 중이고, 지난달 30일 기준 응급실 병상 수(5,918개)도 올해 2월 첫째 주(6,069개) 대비 97.5%로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지역·기관별 응급실 위기를 인정하고 진화에 나선 것은 응급실 문제가 더 커지면 의료 개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의료계는 전공의 집단 이탈과 그 빈자리를 메워 온 전문의들의 피로 누적, 이직 및 사직으로 인해 응급실 배후진료가 마비된 것을 응급실 위기의 진짜 이유로 지목한다.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중증환자를 맡아줄 필수의료 또한 진료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 응급실은 물론 서울의 대형병원 응급실도 현 상태가 이어지면 버티기 어렵다는 우려가 높다.
정부는 긴급 대책으로 군의관·공보의 응급실 신속 배치를 내놨다. 박 차관은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총 15명의 군의관을 이달 4일 배치하고, 9일부터는 군의관와 공보의 235명을 위험기관 중심으로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료지원(PA) 간호사 및 촉탁의 채용을 통해서도 응급실 인력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건강보험 수가(의료 행위의 가격) 250%, 배후 진료과 수술·처치·마취 200% 가산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박 차관은 "범정부적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하고 지자체, 의료기관들과 협력해 지금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의료 인력 부족 등 오랜 기간 개혁이 지체되며 누적된 구조적 문제인 만큼 궁극적으로 의료 개혁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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