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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싸움 말고 정치할 때다

입력
2024.09.04 1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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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대결적 인식 보여준 국정브리핑
총선 참패 후 "정치하는 대통령" 다짐 무색
개혁 추진 위해서도 갈등 조정 능력 갖춰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추석 연휴 응급실 공백 위기를 우려하는 기자에게 "의대 증원을 완강히 거부하는 분들의 주장"이라며 "현장에 가보라"는 답변부터 심상치 않았다. 여야 협치와 영수회담에 대해선 "살면서 처음 보는 국회"라며 거부했고,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한 반국가세력이 누구냐는 질문에 6·25를 언급하며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반국가, 종북세력들이 앞잡이를 했다"고 답했다.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뿌리 깊은 대결적 인식이 드러난 자리였다.

4·10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제안하면서 참모들에게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선 '취임 이후 2년 동안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총선 참패가 말해주듯 민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정치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다짐일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의 본질은 무릇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한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국정 책임자로서 당연한 대통령의 직무다. 난마와 같은 이해관계를 단칼에 조정하고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윤 대통령이 총선 이후 정치를 제대로 해왔다면, 최소한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 반대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시작된 의료 공백은 6개월이 지나도록 해소될 기미가 없다. 2022년 9월 '바이든 날리면' 자막 논란으로 시작된 MBC와의 갈등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으로 이어져 2년째 지속 중이다.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둘러싼 광복회와의 갈등, 특검 등을 둘러싼 야당과의 갈등, 심지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도 사사건건 충돌하는 등 대통령 주변에 온통 전선(戰線)이 그어져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은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과 관련해 "저항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자리였다. 소명에 가까운 대통령의 의지와 별개로 실제 개혁을 추진하려면 저항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국민 지지를 확보하거나, 대립 속에서도 어떻게든 갈등을 조정해 내려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윤 대통령의 딜레마는 둘 다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주 23%(한국갤럽)로, 취임 이후 두 번째 낮았다. 의정갈등에서 보듯 상대를 유·무죄나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검사 시절의 대결적 세계관도 여전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도 마찬가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은 처음이다. 탄핵과 특검을 남발하는 거대 야당이 못마땅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22대 국회 첫 민생법안이 합의 처리되고 여야 대표회담이 진행되는 등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상황에 굳이 찬물을 끼얹어야 하나. 4대 개혁 추진에 야당의 입법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 인식에 대한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윤 정부의 가장 큰 숙제다. 국정 성과를 하나둘씩 거두기 시작해야 할 시기에 4대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소신과 의지를 밝혔다는 것에 고무돼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정권 말에다 나올 법한 여권 내 우려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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