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미역국을 끓였다. 명절이 지나면 늘 차례상에 올랐던 황태포로 국을 끓인다. 황태만큼 미역과 잘 어울리는 국 재료가 또 있을까. 과정도 간단하다. 잘 달궈진 큰 프라이팬에 잘게 찢은 황태를 넣고 볶는다. 기름을 넣지 않는 게 중요하다. 미리 볶아 둔 황태와 불린 미역을 들기름 듬뿍 두른 냄비에 넣고 달달 볶는다. 들기름 향이 완전히 스며들 때쯤 쌀뜨물을 넣고 팔팔 끓인다.
이제, 멍 때리기만 하면 국은 알아서 깊은 맛을 낼 것이다. 가스레인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국 냄비만 들여다본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편안해지면 불을 줄이고 마늘 두세 통을 다져 넣는다. 이틀간 입이 행복할 것이다.
황태는 바닷바람에 말린 명태다. 겨울 찬 바람에 몇 번이고 얼었다 녹아 누런 빛이 나고 맛도 좋다. 황태는 더덕북어라고도 불린다. 얼어 부풀어 오르면서 마른 모양이 더덕 같아서다. 이름 하나로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명태. 크기, 말린 상태, 색깔, 조리법 등에 따라 달리 불리는 명태의 이름을 알아봐야겠다.
갓 잡아 올려 팔딱팔딱 뛰는 명태는 생태다. 이맘때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 가면 맛있는 생태찌개를 먹을 수 있다. 고성, 속초, 강릉, 양양, 동해, 묵호, 삼척…. 이곳에선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해도 걱정 없다. 다음 날 아침, 양푼에 끓인 생태찌개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으면 속이 확 풀릴 테니까.
명태는 말려도 맛있다. 바싹 말린 것은 건태, 북어다. 어린 명태인 노가리는 아기태로도 불린다. 한겨울에 잡자마자 얼린 명태는 동태다. 재미있는 이름도 있다. 명태의 내장을 빼고 코를 꿰어 반쯤 말린 코다리다. 아쉽게도 코다리는 표준국어대사전엔 오르지 못했다. 짭조름해서 맥주 안주로 먹기 좋은 깡태와 먹태 역시 비표준어다.
명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버릴 게 없는 '국민' 생선이다. 알뿐만 아니라 창자, 아가미까지도 젓갈로 변신해 밥상에서 사랑받는다. 명태 알을 소금에 절인 것은 명란젓, 명태의 창자에 소금과 고춧가루 등 갖은양념을 해서 담근 밑반찬은 창난젓이다. 아가미만 손질해 소금을 뿌린 뒤 삭힌 것은 아가미젓이다. 간혹 창난을 한자어 ‘란(卵)’으로 생각해 '창란'으로 잘못 표기하는 이가 있다. 창자와 알은 구분해 써야 한다.
오현명의 가곡 '명태'는 소주를 부른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짜악 찢어지며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시가 되고 안주가 되고 이야기도 되는 명태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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