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휙, 바람이 불고 간 자리에 은빛 파도가 누웠다 일어났다. 살찐 가을이 차가운 표정을 짓자 억새가 은색 옷을 꺼내 입었다. 가녀린 몸매에 그 어떤 색을 더하지 않았지만 든든하고 화려하다. 달이 뜨면 군자의 모습으로 더 빛날 것이다. 곱게 화장하고 바다 건너온 서양 억새는 그 기품에 눌릴지도 모르겠다.
비 그친 투명한 아침에 억새들이 손잡고 서 있는 들판을 걸었다. 누군가 시작한 노래에 나도 흥얼거렸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고복수가 부른, 여든 살도 더 된 가요 ‘짝사랑’이다. 어릴 적엔 노랫말의 뜻도 모른 채 친구들과 “아아~ 으악새”를 불러 젖혔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으악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으악새는 지금껏 논쟁거리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으악새’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사전에선 으악새를 ‘억새의 사투리’로 설명했다. 그즈음 경상도 가수 고복수가 억새를 으악새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파다했다. 억새의 옛말이 ‘어웍새’이니 ‘으악새=억새’라는 설도 들렸다.
그러자 왜가리의 사투리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왜가리의 사투리가 ‘왁새’. 왁새를 길게 소리 낸 게 ‘으악새’로, 으악새를 풀이 아닌 새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작곡가 손목인이 작사가 박영호에게 ‘으악새’가 어떤 새냐고 물었더니 “고향 뒷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그냥 ‘으악새’로 했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게 사실이라면 ‘으악새’는 억새가 아니라 새다.
으악새가 새면 어떻고 억새면 어떠랴.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김새가 비슷하니 그럴 만도 하다. 산과 들에 억새가 있다면 축축한 곳엔 갈대가 있다. 반수생 식물인 갈대는 습지, 강, 호수 등지에서 잘 자란다. 시조시인 정완영(1919~2016)이 노래한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던” 을숙도에 갈대가 많은 이유다.
갈대도 꽃을 피운다. 솜처럼 흰 털이 많고 부드럽다. 식물학자들은 이 하얀 털뭉치를 꽃이 아니라 ‘솜털씨앗’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내 눈엔 꽃이다. 갈꽃, 갈대꽃이다. 우리말에 '억새꽃'이 없는 건 아쉽다. 국어사전에 억새의 꽃은 ‘새품’으로 올라 있다. 들과 산에선 억새가, 강과 호수에선 갈대가 하얗게 그리움을 모으면 수척한 우리 감정도 억세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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