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따뜻한 말이 그리운 계절이다. 볕, 구들, 아궁이, 아랫목… “속이 든든해야 안 추운 법이여~”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회사 근처 남대문시장엔 화톳불이 칼바람을 재우고 있다. 화톳불가로 빙 둘러선 상인들 틈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산 아래 건설 현장에서도 화톳불이 노동자의 언 손과 발을 녹일 것이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주는 화톳불. 따뜻한 말에 화톳불을 얹었다.
맘 통하는 이들과 밥 먹는 자리는 늘 행복하다. 단골 식당 사장의 정겨운 인사가 입맛을 돋운다. “된장찌개 드실 거죠? 김장을 일찍 담갔더니 벌써 잘 익었어요. 흰밥에 척 걸쳐 드셔봐요.” 반찬 몇 가지와 공깃밥이 밥상에 올랐다. 의식이라도 치르듯 다 같이 밥뚜껑에 두 손을 얹었다. 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의 주인공들처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날이 추워지면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휴대폰을 보던 사람도,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도 밥이 나오면 밥뚜껑 위에 손을 올린다. 뜨거운 걸 잘 만지는 친구는 밥공기를 아예 감싸 쥔다. 시인의 노래처럼 밥 앞에선 누구나 공손하다. 어쩌면 모은 두 손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기도일지도 모르겠다.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다. 그래서 예부터 밥은 만들지 않고 지었다. 동사 ‘짓다’는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을 만들 때 어울린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등을 만들다”로 설명한다. 땅에 씨를 뿌려 기르고 거두는 과정도 귀한 일이다. 그래서 농사도 짓는다고 말한다.
어디 이뿐인가. 건강을 되찾는 약도 정성껏 짓는다. 짓는 이의 정성이 담겨야 아픈 이가 빨리 낫는다. '짓다'는 창작 행동에도 잘 어울린다. 글을 짓고 시를 짓고 노랫말을 짓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이름을 짓는다.
밥을 앙구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밥 짓는 모습만큼이나 정성스럽다. '앙구다'는 음식이 식지 않게 불 위에 놓거나 따뜻한 데에 묻어 둔다는 뜻이다. 밥을 앙구고, 국도 앙군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집집마다 아랫목에 손을 넣으면 앙궈 둔 밥그릇이 따뜻하게 만져지곤 했다. 식구를 위하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처럼 밥은 이불 품에서 식지 않았다.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니 두 손이 절로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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