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범죄자가 얻은 범죄수익을 당사자가 사망해 공소제기가 불가능하더라도 국가가 몰수·추징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비슷한 취지로 미국, 독일 등에서 시행 중이다. 실제론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이다. “전두환씨에게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 2,205억 원 중 867억 원이 환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장 의원이 밝힌 이유다.
□ 또 하나 배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SK 300억 원’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가 비자금 904억 원이 기재된 메모가 공개된 점”을 들고 있다. 최고권력자 집안과 재벌가문 간 ‘세기의 결혼’이 세월이 흘러 이혼소송으로 번지자 엄청난 금액을 다투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일이다. 만약 액수 자체가 애초에 그들 것이 아닌 부정한 돈이라면 황당하다는 사회적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 ‘강성 입법’ 전성시대나 다름없는 세태다. 취지에 동의한다면 요즘 얘기하는 ‘정치 효능감’을 체감할 것이다. 민주당은 ‘헌법부정 및 역사왜곡 행위자 공직임용금지 특별법’을 당론 발의했다. “매국행위가 있어도 마땅히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대표발의자는 백범 김구의 증손자다. 특별법이 규정한 역사왜곡 행위엔 ‘독도영유권과 헌법이 정한 영토규정을 날조해 유포하는 행위’도 포함됐는데, 오기와 누락도 ‘날조’ 행위로 규정해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거사진상규명법 등 ‘4대 개혁입법’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고 몰락한 경험이 야권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오판하거나 오만하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양상이 달라 보인다. 당시가 ‘실험 여당’의 비현실적 의욕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집권진영이 온갖 무리수로 강성 입법을 자초하는 듯하다. 조선인 강제동원이 명기되지 않은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찬성하고, ‘위안부’ 강제성에 대한 질문을 거부하는 방송통신정책 수장, 친일파 명예회복에 관심 있는 독립기념관장 임명까지. 원대한 과욕도 아니고, 그저 건강한 공동체 유지나 국가와 한국인의 기본을 걱정해야 할 시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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