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모처럼 손을 맞잡은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금세 옅어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잇단 말 바꾸기로 의료계를 자극하고 있고, 의료계는 비현실적인 요구만 고집하며 협의체 참여를 거부한다. 정부도, 의료계도 출구 없는 파국을 맞겠다는 건가.
대통령실과 정부는 지난 6일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 “의료계가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다면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호응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협의체 구성 제안에 앞서 대통령실과 사전조율에 공을 들인 결과라고 한다. 모처럼 정치권이 판을 깔아줬으니 완강한 입장을 고수해온 대통령실과 정부로선 못 이기는 척 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보도설명자료를 내서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재논의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일관된 입장이라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굳이 조건을 달아서 재논의 불가를 언급하는 게 의사들을 자극해 간신히 살려낸 불씨마저 꺼뜨릴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면 정무적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 놓고 8일에는 “의료계가 합리적 근거를 갖고 오면 무슨 안이든 논의할 수 있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고 하니 종잡을 수 없다. 그냥 아무런 단서 없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원점에서 검토할 테니 일단 협의체에 들어오라고 일관되게 말할 순 없는 건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취소”를 고집하는 의료계도 이젠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됐다. 옳든 그르든 전년보다 1,497명을 늘린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부터 전국 대학들이 수시 원서 접수를 시작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증원을 백지화한다면 수험생들의 입시 계획이 완전히 뒤틀려 소송으로 번지는 등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정부가 밝히는 2026학년도 원점 논의가 의료계 입장에서도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협의체에 참여해 논의를 시작하는 게 답일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대화의 기회마저 정부와 의료계가 발로 걷어차 버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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