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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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을 종종 다시 본다. 희한하게도 OST '러브 테마(Love theme)'를 들을 때마다 영화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마지막에는 꼭 운다. 그렇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처럼, 어떤 향을 맡기 무섭게 침샘을 자극하며 꼭 마시고 싶어지는 커피가 있다. 파나마 게이샤 커피(Panama Geisya coffee)다.
게이샤를 처음 맛보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도쿄 유학 시절, 테이스팅 세미나에서 “귀한 커피”라며 소개된 게 처음이었다. 분쇄하는 순간부터 이미 향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알던 커피 향과도 달랐다. 소량 배분된 한 모금은, 충격적이게도 '파인애플주스' 그 자체였다. 더구나 코와 뇌를 감싸는 진한 여운은 절대로 잊히지 않을 강렬한 자극이었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원에서 재배되던 게이샤 품종은 2000년대에 들어 '벼락스타'가 됐다. 이 커피가 옥션에서 천문학적인 낙찰가를 기록한 이후 여러 대륙 산지에서 앞다퉈 게이샤를 심기 시작했다. 씨앗을 갖다 심는다고 다 같은 게이샤가 될 리 없지만, 게이샤라는 이름만 붙어도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새로 오픈한 로스터리 카페 사장님이 '탄자니아 게이샤'라고 뿌듯해하며 커피를 내어주셨다. 그러나 전혀 게이샤 같지 않은 향에다, 생두 모양마저 이제까지 알던 것과 달랐다. 다만 포장지에는 '탄자니아 게이샤'라고 분명히 쓰여 있었다. 나중에 다시 로스팅해서 맛을 보니 아주 흐릿하게 게이샤 풍미가 느껴지기는 했다.
스페셜티 커피 붐이 일면서 많은 생산국에서 재래종 이외 '돈이 되는' 품종을 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하지만 품종 특징마저 잃은 게이샤나 애너로빅(무산소 발효) 방식 또는 인위적 가향(加香)으로 갖가지 향을 입힌 커피가 '고급품'으로 둔갑해 비싼 값에 유통되는 현실을 보면 미간이 찌푸려진다. 게다가 가향을 하면 '2차 가공품'이 되는 셈인데, 이에 대한 법 규정도 불분명한 채로 거래되는 상황은 많이 걱정스럽다.
어쨌든 게이샤 품종만의 뚜렷하고 명확한 개성을 살려 커피를 생산하는 지역은 파나마이다. 영리하게 제품을 만들고 소비 심리를 활용한 마케팅에도 능숙한, '잘나가는 영화제작사' 같은 생산지임에는 분명하다. 생두 1㎏당 평균 가격이 1만~2만 원인 상황에서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원 최고품의 최근 낙찰가는 1㎏당 1,300만 원도 있었다. 심플하게 계산해서(로스팅하면 800g) 10g을 한 잔이라고 보면, 한 잔에 16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결론이다. 오호통재라! 파나마만 천국인가. 이 커피를 사 마실지 말지는 각자가 고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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