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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총선 백서

입력
2024.10.01 15:00
수정
2024.10.01 16:08
22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제22대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대표)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제22대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현 대표)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백서(White paper)는 정치, 경제, 외교 등 분야에서 주요 사건이나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 국민에게 알리는 정부 보고서를 이른다. 영국에서 표지를 흰색으로 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임기를 마친 정부가 재임 중 국정 활동과 향후 과제 등을 정리해 국정 백서를 발간한다. 외교부, 국방부,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도 발간하는데, 최근엔 정부에 한정하지 않고 특정 주제를 종합 정리한 조사보고서도 통칭한다.

□ 정당도 백서를 쓴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패한 정당이 백서를 통해 패배 원인을 분석해 쇄신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밀실 공천, 청와대의 과도한 개입 등을 패배 원인으로 지적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세월호 막말, 효과적 전략 부재 등을 참패 원인으로 꼽았다.

□ 지난 4·10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를 경험한 국민의힘은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란 비장한 각오로 백서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총선 이후 6개월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당초 7월 전당대회 이전 발간을 목표로 했으나, 전대에 나선 한동훈 대표 측이 중립성 문제를 제기하며 시기가 미뤄졌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한 한 대표의 책임론이 부각될 경우 전대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 국민의힘의 총선 백서는 지난 8월 서범수 사무총장에게 제출됐고 현재 최고위원회 보고·의결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한 대표의 이재명·조국 심판론,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수직적 당정관계 등이 패배 원인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윤·한 충돌의 또 다른 불씨가 될까 봐 발간을 뭉개고 있다면,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책임론'을 의식해 백서를 공식 발간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과 다를 바 없다. 여론에 떠밀려 군색한 변명이나 네 탓 공방으로 채워진 뒤늦은 백서를 누가 인정하겠나. 결국 총선에서 3연패하고도 제대로 된 반성문도 못 쓰는 정당이란 이미지만 남았다. 소탐대실이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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