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죄책감 없는 궁극의 리얼리즘, 딥페이크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월남' 중에서
1953년 12월 창간한 '플레이보이'의 첫 번째 기사 제목은 '1953년 미스 꽃뱀'이었다. "이전 세대들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았고, 그곳은 1953년의 현실과는 전혀 딴판인 세계였다"고 전한다. 남자들이 남자답게 굴며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었던 그 아름다운 과거와는 다르게, 1953년의 남성들은 "돈을 노리는 걸레들"에 의해 "항상 남자들만 돈을 내고, 내고, 내고, 또 낸다"며 억울해한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을 ‘미스 꽃뱀’(Miss Gold-Digger)으로 호명했다.
1953년의 김치녀, 꽃뱀, 무임승차녀
이전 아버지 세대에 비해 권력과 특권이 줄어들었다고 스스로 여기는 1953년의 남성들은 젠더 위계에 의한 권력인 '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성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남편 친구들과 함께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 습관"이 있으며 "남편이 감당할 수 없는 값비싼 취향을 가진 소비광"이자, "막대한 이혼 위자료를 챙겨가는 꽃뱀"으로 여성을 호명한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아무 남자와 뒹구는 걸레년, 사치를 부리는 김치녀, 남자에게 돈을 우려내는 꽃뱀이자, 의무를 지지 않고 권리만 누리는 무임승차녀로 말해볼 수 있겠다.
오늘날 여성 혐오의 언어가 70년 전, 포르노 산업의 그 시작부터 함께 있었다. 아니, 포르노는 여성을 끌어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야 정확하다. 포르노는 단순히 야하고 음란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성 혐오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성폭력이다. 포르노적 여성 혐오의 세례를 받은 플레이보이들은 걸레년, 김치녀, 꽃뱀, 무임승차녀로 여성들을 끌어내린 뒤, 여성들을 벗기기 시작했다.
포르노적 통과의례
1969년 창간한 '펜트하우스'는 플레이보이보다 조금 더 노골적인 이름을 여성에게 붙인 뒤 성기와 음모를 그대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그룹 섹스, 변태 섹스와 같은 콘셉트로 여성의 신체를 능욕했다. 1974년 창간한 '허슬러'는 아예 하드코어한 포르노물로 나갔다.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X등급의 충격적인 이름으로 여성을 호명하며 성기 안쪽으로까지 화보에 싣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혹하게 벗기고, 벗겨 내면서 포르노 출판산업은 여성 혐오로 무장된 이미지들을 쏟아부었다. 여성 신체를 구멍으로 환원시키는 포르노 이미지의 체계를 완성해나갔다. 그것은 인간 이하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여성의 인간적 속성을 제거하는 방식과 함께 이루어졌다. 여성을 권리를 가진 인간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어느 딥페이크 성착취물 텔레그램 방에 입장하기 위해 반드시 "댓글로 1명 이상 능욕하라. 안 하면 바로 강퇴다”는 지시문에 따라 수행된 ‘능욕’은 여성을 벗기기 전, 인간 이하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포르노적 통과의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자를 강력하게, 여자를 무력하게
오늘날 포르노 산업의 바탕을 이룬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허슬러' 같은 포르노 잡지들은 가족, 교육, 직장, 시민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여자, 섹스, 전쟁, 사냥, 스포츠, 범죄 콘텐츠를 기반으로 편향된 남성성을 디자인했다. 반여성적 이데올로기를 장착한 포르노 출판산업이 영화 산업으로, 비디오 산업으로, 케이블 산업으로 확장해 갈수록 여성은 점차 비인간화되어, 동물, 고기, 사물의 은유 체계 속에서 착취되었다.
포르노가 디자인한 남성성에 순응한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를 언제든지 올라탈 수 있는 놀이기구, 자동차로 만들며 사물화했다. 사냥한 동물을 썰어 먹듯 고기화하고, 암캐, 젖소, 백마, 암퇘지로 동물화했다. 거리낌없이 처리/처분할 수 있는 비인간의 신체로 재현했다. 여성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온전한 인간성을 비가시화하며,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기 훨씬 쉽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남성이 사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포르노에서 섹스는 남자를 강력하게, 여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무기인 셈이다.
일상 속 디지털 포주들
각 가정에 인터넷이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그램 단위의 잡지나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메가바이트 단위로 실시간 전송되는 디지털 파일 포르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기기가 대규모 보급되면서, '현실 여자들' '모두 진짜' '무연출' '무편집' '실제상황'이라 이름 붙여진 포르노들이 현실 세계로 점차 유출되었다. 현실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실의 기록물로 제작, 유통됐다. 포르노 사이트 '걸스 곤 와일드' 창업가는 자신들의 산업을 "관음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회사"라 소개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포르노 산업은 더욱 일상적인, 보통의, 리얼함으로 자신들의 문법을 본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애인과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폭력(리벤지 포르노), 화장실-탈의실-모텔 등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 촬영(몰카), 여성에 대한 강력 범죄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디지털 성착취(디지털 성범죄), 성행위 동영상에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포르노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은 현실 세계 속 엄마, 누나, 여동생, 친구, 지인, 애인, 부인, 간호사, 여성 군인, 여교사… 로 향했다. 시청자에서 본격적인 제작자로 나선 반사회적 남성들의 포르노 스튜디오는 일상 공간이었다. 여성 혐오적 메커니즘과 결탁한 가학적 포르노 제작자들은 디지털 자본(비트코인, 전자화폐)을 활용하여 저마다 디지털 포주가 되었다. 이미 초등학생도 디지털 포주로 활동했다는 뉴스는 비밀로 하고 싶다.
궁극의 리얼리즘 제작자들
#궁극의리얼리즘, 딥페이크 지인능욕방에 달린 해시태그였다. 궁극 窮極(명사):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 모든 여성을 포르노에 등장시킬 수 있는 궁극, 언제 어디서든 포르노를 제작할 수 있다는 궁극, 누구든 자신이 제작한 포르노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궁극, 생식기로 모든 여성을 사물화하는 포르노적 남성성이 도달하고자 한 궁극의 현실을 제작하는 중이다. 70년 전 '플레이보이'가 지향했던 옆집 여자 스타일(girl next door look)의 궁극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결국엔 섹스가 자신이 아는 여성에게 죄책감 없이 사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행위라고 여기는 한 세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이번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가 드러내고 있는 것은 시청자였던 남성들을 '제작자'의 반열로 대거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포르노 제작’에 뛰어든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이어지는 남성 계열은 체계적인 젠더 교육 없이 여성혐오 사회 속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남성들은 스스로를 연민하고, 이로써 가해자 집단인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을 권리를 획득했다"고(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2020) 여기는 역사상 가장 수치심과 죄책감 없이 #궁극의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제작자이자 디지털 포주가 되어가는 중이다.
포르노와 헤어질 결심
대학 시절, 반포르노 교육을 마친 뒤 평소에 신뢰하던 페미니스트 선배가 그 자리에 있던 유일한 남성이었던 나를 따로 조심스레 불렀다. "너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어. 포르노를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앞으로도 계속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넌 지금 사랑, 존중, 유대감도 없이 오직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여성을 보고도 흥분을 느끼는 인간이 되겠다는 거야. 그런 너 자신을 견딜 수 있겠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날 이후로 포르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20년 가까이 포르노를 보이콧 중이다.
자, 이제 나는 내가 속한 남성 공동체에 물어봐야겠다. 성적으로 착취, 학대당하는 여성을 보고도 흥분을 느끼는 자신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정말 스스로를 그렇게 인정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고도 사람입니까?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썩은 내.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월남' 중에서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서한영교 작가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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