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인 한강(53) 작가는 1993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후 30년간 성실하게 글을 썼다. 장편소설 7권, 단편소설집 4권, 시집 1권을 냈고, 산문집, 동화까지 써냈다. 스스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한 작품도, 스웨덴 한림원의 논평처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작품도 있다. '한강 신드롬'이 휘몰아친 요즘 서점가엔 한강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점마다 차린 '노벨문학상 특집 코너'엔 그의 책을 집어드는 손길이 바쁘게 오간다.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한강의 내면에, 그의 작품 세계에 제대로 가닿을 수 있을까. '한강 문학 입문자'를 위한 책 8권을 골랐다.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었다"는 '소년이 온다'(2014)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에 맞아 죽은 열다섯 살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편소설이다. 한강은 “온 힘을 다해 (5·18을) 애도하고 응시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업실에 갔다가 세 줄도 못 쓰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고, 세 줄을 쓰고 한 시간 운 날도 있었다. 국가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을 밀도 높게 그려낸 첫 작품. "책장을 넘기며 살갗이, 몸이 아팠고 울면서 책을 덮었다"는 후기가 많다. 한강은 “이 소설을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한강이 실제 꾼 악몽 '작별하지 않는다'(2021)
제주 4·3 사건을 세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장편소설. 한강이 7년에 걸쳐서 쓴, 가장 최근작이다. 소설 맨 처음에 나오는 악몽은 한강이 실제로 꾼 꿈이다. 그는 이 소설을 '고통스럽게' 썼다. 출간 후기에서 "더 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검색창에 '학살'이란 단어를 넣지 않아도 된다. 시체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 소설에서 풀려날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썼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와 이 작품이 짝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소년이 온다'를 쓰며 악몽,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세계가 한강을 주목하게 만든 '채식주의자'(2007)
세 편의 단편소설(‘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로 구성된 연작소설. 에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가부장 폭력의 상징인 육식을 거부해 세계와 불화하는 중년 여성에 관해 썼다.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영어판이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한강이란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잔인한 폭력과 적나라한 섹스 묘사를 놓고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풀어냈다'는 평가와 '기괴하고 불편하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주인공을 묘사하는 첫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 소설을 잘 이해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책 전체가 작가의 말" 자전적 소설 '흰'(2016)
화자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편소설. 배내옷, 각설탕, 입김, 수의 등 65개의 '흰 것'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으며, 스웨덴 한림원은 “작가의 시적 스타일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초판 출간 때 한강은 “이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며 ‘작가의 말’을 따로 쓰지 않았다. 그는 이 소설이 “매우 개인적이며 꽤 자전적인 작품”이라며 그를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권하는 책 중 한 권으로 꼽았다. 2018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아르헨티나가 열광한 '희랍어 시간'(2011)
말을 잃게 된 여성과 시력을 잃어가는 고대 그리스어 선생님의 만남을 다룬 장편소설. 최근작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30대부터 시력을 잃다가 실명한 아르헨티나 대문호 호르헤 보르헤스(1899∼1986)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소설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아르헨티나 언론이 이 작품을 집중조명했다. 2017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스물셋 한강이 살핀 고단한 이들 '여수의 사랑'(1995)
소설가로 등단한 지 1년 만에 나온 한강의 첫 책. '신인 소설가' 시절 한강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붉은 닻' 등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한강이 23세 가을부터 24세 가을까지 쓴 작품들로, 상처 입고 고립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은 음울한 분위기가 지배적. 이 작품에 대해 한강은 "오히려 젊기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다 상처가 하나씩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그런 인물을 설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일한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2013)
한강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시인 등단 20년 만인 2013년 나온, 그의 유일한 시집. 스웨덴 한림원이 상찬한 '시적 문체'의 근원이 담겼다. '저녁의 소묘'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시 등 60편이 수록됐다. 노벨상 수상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함께 있었던 20대 아들을 기르며 쓴 '괜찮아' '효에게. 2002. 겨울' 등에서는 '엄마 한강'도 엿볼 수 있다. 갓난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 '왜 그래' 물으며 함께 울었던 초보 엄마가 '괜찮아'라고 말한 후 두 사람의 울음이 멈춘 일화를 담은 '괜찮아'는 특히 부모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한강의 '집'이 궁금하다면 '디 에센셜: 한강'(2023)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과 단편소설 2편('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시 5편, 산문 8편을 두툼한 한 권에 담은 선집. '한강 문학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자, '한강의 세계'를 비교적 빠르게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수록 작품은 그가 고르고 수록 순서도 직접 결정했다. 장르마다 달라지는 글 쓰기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다. 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사주에 역마가 들어서인지 무던히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는데, 오직 쓰기만을 떠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집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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