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 11일 밤 북한이 이른바 ‘외무성 중대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이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무인기로 반공화국 정치 모략 선동 삐라를 살포했다”며 보복을 위협하고 나섰다. 북한은 한국이 세 차례나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날려 대량의 전단을 살포했다며 같은 ‘도발’이 재발될 경우 경고 없이 군사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북한, '평양 무인기'에 격앙..."재발될 경우 군사적 조치" 엄포
북한은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서 전단을 살포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해당 무인기가 평양에 살포한 전단을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상당히 큰 덩치의 무인기가 전단이 들어 있는 통을 투하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무인기를 근접 촬영한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이 해당 무인기를 격추하거나 포획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일까? 북한은 다음 날인 12일, 김여정 당중앙위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내고 “한국의 무인기가 다시 발견되면 끔찍한 참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 수위를 높였다.
우리 정부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보낸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안보 불안 심화가 곧 경제적 피해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군사도발에 나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밀집도를 자랑한다던 평양의 방공망을 뚫고 김정은 관저가 있는 중심부에 무인기를 보내 전단을 살포한 주체는 누구일까?
드론 기술 발달로 민간인도 띄울 수 있어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군용이 아닌 민수용 드론을 평양까지 날려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드론 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정부’가 아닌 ‘시민’들이 온라인 마켓에서 구한 부품으로 만든 드론이 전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중에는 제트엔진을 장착하고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순항 미사일 유형의 드론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드론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다. 드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인터넷에 올라온 도면을 보고 부품을 구해 몇 시간이면 전투용 드론을 만들어 띄울 수 있을 정도로 드론 기술과 고성능 부품들이 보편화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량으로 날리고 있는 ‘샤히드’ 드론도 뜯어보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조달한 민수용 부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곳곳을 타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드론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별다른 기술이나 전문성이 없는 민간인들이 만든 드론이 어떻게 세계 최고 밀도를 자랑한다던 평양의 다층방공망을 뚫고 노동당 중앙당사 상공까지 날아갈 수 있었을까? 북한보다 더 강력한 방공망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러시아는 지난 8월 31일 밤, 모스크바 여러 곳에 우크라이나군 자폭 드론 공격을 받았다. 당시 피격된 시설 중에는 크렘린에서 불과 10㎞ 떨어진 곳의 대규모 정유소도 있었는데, 이 때문에 러시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정유소를 불바다로 만든 자폭드론이 방향을 바꿔 날아왔다면 크렘린이 피격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는 장거리 방공무기 S-500과 S-400, S-300PMU2, 중거리 방공무기 S-350과 부크-M3, 단거리 방공무기 판치르, 그리고 다수의 대공포로 구성된 다층방공망의 보호를 받는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폭 드론이 도심까지 날아들었던 것은 러시아가 ‘세계 최강’이라고 선전해온 방공무기들의 실제 성능이 카탈로그 제원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모스크바도 우크라이나군 자폭 드론 공격받아
러시아는 소련 시절이던 지난 1987년에도 동시대 최강의 방공망이 보호하고 있다는 모스크바 한복판에 서독의 경비행기가 날아들어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제 막 조종사 면허를 딴 19세 청년이 함부르크에서 이륙해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를 거쳐 핀란드 헬싱키로 갔고, 이곳에서 이륙해 소련 영공을 ‘정면 돌파’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비행기를 몬 마티아스 루스트라는 인물은 지금의 에스토니아 방면에서 소련 영공에 진입한 뒤, 무려 700㎞가 넘는 거리를 날아 모스크바로 갔다. 그리고 그가 탄 경비행기는 소련 서기장의 집무실이 있던 크렘린 상공까지 날아갔다. 훗날 그는 크렘린 안마당에 착륙하려다가 KGB에 체포될 것 같아 크렘린 옆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고 회고했는데, 소련 정부는 그가 광장에 착륙해 모스크바 시민들과 두 시간 동안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모스크바 방공망이 뚫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붉은 광장에 날아든 비행체가 경비행기가 아닌 미국의 순항미사일이었다면, 그리고 그 미사일이 크렘린을 노렸다면 당시 소련 서기장을 비롯한 최고위 지도부는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사건 발생 직후 소련은 국방장관과 방공군사령관을 비롯한 책임자들을 대거 숙청했다.
이후 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는 모스크바 방공망을 대대적으로 보완하며 방공작전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자신의 신변 안전에 대한 걱정이 많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제1레닌특수목적방공미사일방어군’이라는 야전군 규모의 대규모 방공부대를 조직해 모스크바 방공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이 부대에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신·최강의 방공무기들이 가장 먼저 배치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여러 차례 방공망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을 보이며 실제 방공 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고 있다.
구형 방공무기가 책임지는 평양 방공망 '구멍투성이'
모스크바 방공망을 뚫은 우크라이나 드론은 ‘최첨단’과는 거리가 멀다. 오토바이 엔진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소음이 매우 크고, 저공을 느린 속도로 날기 때문에 일단 발견되면 소총 사격으로도 격추할 수 있다. 민간인들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이런 드론에 모스크바 방공망이 뚫리는 모습을 보고 가장 두려움을 느낀 사람은 김정은이었을 것이다. 지금 평양의 방공망은 37년 전 ‘세스나’ 경비행기에 뚫렸던 모스크바 방공망과 비교했을 때 기술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모스크바는 장거리용 S-200, 중거리용 S-75 및 S-125와 다수의 대공포로 구성된 방공망으로 보호를 받았는데, S-200·75·125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각각 SA-5·SA-2·SA-3로 불리는 구형 방공무기들로 지금 이 순간 평양 방공을 책임지고 있는 무기들이다.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방공무기들은 제원만 놓고 보면 경비행기나 드론 같은 공중 표적을 손쉽게 탐지·격추할 수 있지만, 실제 성능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중국·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개발·제작된 무기들은 윗사람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용 제원과 실제 무기 제원이 다른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실무자는 자리를 보전하고 출세하기 위해 허위보고를 하고, 고위직들은 적당히 넘어가주며 개발·생산비로 책정된 예산을 횡령·착복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러한 풍토 때문에 무기체계의 성능이 부풀려지는 것은 물론, 해당 무기체계가 아예 작동하지 않거나, 실제 생산·납품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류상으로는 부대 편성과 실전 배치까지 완료돼 있는 황당한 사건들도 일상이다.
이번 평양 무인기 사건은 민간인들도 북한 노동당사나 김정은 관저까지 날아들 수 있는 장거리 드론을 만들어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스타링크 위성통신 시스템을 연결해 무인기에 설치된 카메라로 목표물을 정밀 조준할 수도 있고, 무인기에 화공약품을 조합한 급조폭발물 탄두를 실어 물리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살상무기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러한 민간 제조 장거리 자폭 드론이 실제로 전쟁에 사용되고 있다. 군이 아닌, 민간에 의한 북한 지도부 타격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드론은 한국 내 민간단체는 물론, 그 어떤 주체에 의해서도 제작·투발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드론 투발은 이제 정부에서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북한 지도부는 한국이 드론을 날려 보냈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최고존엄’을 향해 드론을 날려 보내려 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안팎의 민심부터 살피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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