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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미 검사 이름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입력
2024.10.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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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상대(가운데) 전 검찰총장이 2012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승용차에 오르기 전 검찰 직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상대(가운데) 전 검찰총장이 2012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승용차에 오르기 전 검찰 직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도대체 한상대가 어디 있는 대학인데, 신문마다 1면에 나올 정도로 시끄러운 거야?"

이명박 정권 말기 취임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포함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이 촉발돼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던 즈음 한 고참 직업 군인이 이렇게 말했다.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의 정점인 검찰총장에게 요즘도 회자되는 '특수통'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등이 집단 반발한 큰일이었다. 서초동과 무관한 사람이긴 했지만, 나름 고위급 군인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이 사태에 대해 아예 '1'도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얘기라 이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혀를 찼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고소·고발·재판 등과 무관한 평범한 사람에겐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 그리고 검사들의 이름은 알 필요가 없다. 가족·지인 등이 농사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농식품부 장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농식품부를, 서초동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굳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애써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검사나 검사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익숙하고, 모르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을까?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을 지내고 정계로 진출한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탓만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검사 출신이 중용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는 언제나 많았다. 거악을 때려잡고,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았던 인물이 인기를 끄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지금은 검찰 해체까지 주장하고 있는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윤 대통령도 정권의 비선실세를, '적폐'를 수사한 '영웅'이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 전까진.

검사가 주목받고 이름을 알렸던 건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후진적이었던 탓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시대가 바뀌었다. 흔하던 대기업 총수들의 비자금 조성이나 권력층 비리에 대한 수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기나 절도 같은 민생 범죄사건을 꾸준히 처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검사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언성(unsung) 히어로다. 외려 한 진영에 확실한 존재감을 준 검사가 이름을 알리고, 국회로 진출한다. 때론 입맛에 맞지 않는 결론을 내면 입길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최재훈 부장검사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도 두고두고 회자될 조짐이다.

우리 사회 주요 이슈가 됐던 사건들을 다룬 검사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정치적 사안이나 권력형 비리 등을 자신들의 뜻대로 처리하지 않은 데 대해 보복성으로 좌표를 찍고, 탄핵하고, 비판하는 건 일차원적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개별 검사를 문제 삼는 것보다 내부적으로 통제하고 외부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검찰에게 몰린 권력을 조정 분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타 검사의 이름보다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을, 인권을 보호했다는 얘기가 듣고 싶다.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검사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더는 몰라도 좋을 것 같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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