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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를 위한 실리적 접근

입력
2024.10.22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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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유승훈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족 국가이면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를 에너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점검해본다.

러시아 극동 사할린에 위치한 액화천연가스(LNG) 탱크의 모습. 로이터

러시아 극동 사할린에 위치한 액화천연가스(LNG) 탱크의 모습. 로이터

러시아는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자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 및 서방의 경제 제재로 에너지 수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 2023년 유럽연합(EU)은 러시아로부터의 석유 및 천연가스 수입을 전쟁 이전에 비해 80%나 줄였다.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에너지 소비 자체를 크게 줄인 덕분이다.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4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첫째, EU는 여전히 많은 양의 석유 및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작년에도 러시아의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 2위 국가는 EU였다. 물론 EU의 노력으로 미국이 유럽 내 천연가스 공급 1위 국가가 되었다.

그러던 EU의 올해 천연가스 수입 1위 국가는 다시 러시아가 되었다.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에는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튀르키예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으로 들어오는 러시아 천연가스는 비용이 낮다. 즉 EU가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도를 대폭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에너지가 부족한 유럽 국가들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나라를 통해 우회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튀르키예 및 인도를 거쳐 지난해 5억 유로의 러시아산 항공 연료를 수입했다. 다른 EU 국가들, 특히 동유럽의 국가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작년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1위, 3위, 4위 국가는 각각 중국, 인도, 튀르키예로 모두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산 석유 및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및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의 석유제품으로 만든 후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구매 후 EU에 되팔아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경기 침체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여 다른 산유국에서의 천연가스 수입량을 줄였지만, 가격이 낮은 러시아 천연가스는 구매를 늘렸다. EU는 그것을 사서 저장해 놓고 사용하고 있다.

셋째, 석유생산량 세계 3위, 5위, 8위, 9위인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브라질, UAE도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 발생 후 전비 마련을 위해 수출용 석유 가격을 낮추다 보니, 운송료를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산 석유가 자국산 석유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도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에너지 안보는 분리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구매 계약을 새로 체결하고, 사할린의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에 투자하는 등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의 4가지 현상으로부터 다음의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면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도 과연 그런가. 러시아산 에너지는 운송거리 및 가격 측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러시아와 굳이 비우호국가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만의 단독 투자는 어렵겠지만, 일본과의 협력을 통한 공동투자는 고려해봄 직하다. 특히 내년은 한일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로 협력 여건도 무르익어 있다. 평화 및 역사 문제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에너지 문제만큼은 철저하게 실리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에너지 수입의존도 94.4%의 에너지 빈곤국가인 우리의 생존전략일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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